HL홀딩스, 회삿돈으로 산 자사주로 승계 '꼼수'?…"이래서 상법개정 해야"

이사회 결의로 161억 자사주 재단에 증여…"주주 가치 훼손 불가피"
승계 꼼수로 활용 가능성…상법 개정해 주주 충실 의무 추가해야

HL홀딩스

(서울=뉴스1) 신건웅 박승희 기자 = HL홀딩스가 회삿돈으로 산 자사주를 무상으로 재단에 넘기기로 하면서 '밸류업 역행'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가 가진 자사주를 재단에 넘기면 오너 일가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우호 세력이 생기는 셈이지만, 일반 주주들의 주주가치는 훼손이 불가피하다. 주주들의 반발에 HL홀딩스는 "최소 5년간 재단의 의결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주주들은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무상 출연 철회를 요구했다.

일부에서는 이사회 결의만으로 161억 원이 넘는 자사주를 재단에 기부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사회가 일반 주주는 무시하고, 특정 대주주만을 위해 거수기 노릇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이사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장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를 몸소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회삿돈으로 매입하는 자사주가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나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자사주 매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주력해왔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HL홀딩스(060980)는 비영리재단 법인을 설립해 자사주 47만 193주(20일 종가 기준 약 161억 원)를 무상 출연하기로 했다. 총발행주식의 4.76%이자, 보유 자사주(56만 720주)의 84%에 달하는 규모다. 나머지 16%(9만 527주)는 소각할 계획이다.

자사주 재단 출연에 대해 HL홀딩스는 '사회적 책무 실행'을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주주들은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며 불만들 드러냈다. 대주주의 경우 재단을 통해 우호 지분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일반 주주는 오히려 피해를 보게 됐기 때문이다.

주주 모두의 재산인 자사주를 무상으로 재단에 넘기면 주주 재산권이 침해당한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그만큼 주주가치가 올라가지만, 재단에 넘기면 오히려 가진 기존의 가치를 나눠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재단에 돈도 안 받고 증자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결권은 물론 배당금도 나눠야 한다.

지난 2019년 삼호개발(010960)도 삼호호미재단에 30억원 규모의 자사주 무상 출연을 계획했다가 주주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바 있다.

주주 반발에 HL홀딩스는 "재단에 출연하는 지분 의결권을 최소 5년간 행사하지 않겠다"며 "비영리재단 설립 목적은 우호 지분 확보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주주들은 "회삿돈으로 산 자사주를 무상으로 재단에 넘기는 것은 의결권 문제가 아닌 주주의 재산권이 침해당한 것"이라며 "본질을 흐리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한 주주는 "경영권 분쟁 상태도 아닌데 의결권 행사를 뒤로 미루겠다고 밝힌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며 "주주 입장에서는 의견 한번 묻지 않고 회삿돈으로 산 지분 4.7%를 다른 우호 세력에 넘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자 보호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현행법으로 문제가 없어 주요 기관투자자들 조차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승인으로 이뤄지는 건이다 보니 기관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도 불가능하다. 소액주주들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회 결의로 161억 원이 넘는 돈을 재단에 넘긴 꼴이 됐다. 일각에서는 HL홀딩스를 시작으로 다른 기업들도 자사주를 사서 재단에 증여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사주 20%, 30%씩 가진 회사들이 재단을 만든 후 이사회를 장악해 승계에 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상법 개정의 필요성이 재차 대두되고 있다.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0일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일반투자자 간담회'에 참석해 "경영구조의 문제, 지배권 남용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이사 충실의무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라며 "추상적 주체인 '회사'가 아니라 실제적인 주인인 '주주'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동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행법상 이사회만 장악하면 기업들이 자사주를 사고, 재단을 만들어 승계에 활용할 수 있다"며 "상법 개정을 통해 승계 꼼수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