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국장에서만 용납되는 '더 평등한 1주'

국장에서 만큼은 평등하지 않은 1주의 권리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민주주의에 있어 '더 평등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는 명제로 동물농장에서 특권층을 차지한 돼지들을 풍자했다.

주주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 모든 1주는 평등해야 한다. 그런데 적어도 한국 증시에는 '더 평등한 1주'가 있다. 지배주주들이 쥐고 있는 1주다.

국내 증시에서 30% 남짓한 지분을 쥔 지배주주에 의한 나머지 70% 주주의 이익 침해는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로 주가가 반토막 난 LG화학, 사업이 잘되는 족족 '쪼개기 상장'을 해버린 카카오, SK온을 물적분할한 SK이노베이션은 국내 주식에 투자해 본 사람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사례다.

모든 사례에서 지배주주만 이익을 보고, 장기 가치를 믿고 투자했던 일반 주주들은 피해를 봤다. 기업들이 늘상 사례로 드는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행동이다.

정부가 이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기업가치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지금이라고 다를 바 없다.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에 끌어다 쓴 자금을 고스란히 주주들이 물게 하는 기습 유상증자를 시도했다 철회했다. 두산은 '알짜 회사' 두산밥캣을 상장폐지하고 적자회사 밑으로 붙이려다 한 발 물러났다. 이수페타시스는 일반 주주들의 공감을 얻지못할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일방적으로 결정해 주가가 급락했다.

이들 기업이 모두 한국거래소가 직접 우수한 밸류업 기업으로 선정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포함됐다는 점도 국장의 '블랙 코미디'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는 △정보기술(24종목) △산업재(20종목) △헬스케어(12종목) △자유소비재(11종목) △금융/부동산(10종목) △소재(9종목) △필수소비재(8종목) △커뮤니케이션(5종목) △에너지(1종목) 등 100개사가 포함됐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이처럼 지배주주들이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유는 견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은 이사에게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상법 제382조의3)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회사=지배주주'로만 여겨지고 있다.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상법을 개정해 이사충실의무에 '주주'를 추가하라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커진 원인이다.

그간 이 문제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최근에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결단을 계기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상법 개정으로 이 문제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금투세 폐지 촉구 때만 해도 1400만 투자자를 앞세워 야당을 압박하던 국민의힘과 정부의 태도가 영 미심쩍다. '자본시장법상 대안이 없는지 야당과 함께 상의해 나가겠다'며 대안도 없이 일단 반대부터 하더니, 결국 국민의힘 의원들이 주주가 아닌 경영진을 위해 이사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뺀 상법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투자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1주는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1주는 다른 1주보다 더욱 평등하다'는 억지에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증시는 '글로벌 ATM'으로 불리며 부정적 이미지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 마저 국장 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으며, 이제는 개인 투자자마저 국장을 떠나 미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명확해 지고 있다. 이미 투자자들이 발을 빼기 시작한 국장에 얼마 남지 않은 '골든 타임'마저 놓치게 할 생각인지 묻고싶다.

Kri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