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삼성'이 어쩌다…'국민주'의 추락[시장의 경고]②

삼성전자 올해 고점 대비 94% 하락…외국인 4개월 새 17.5조 처분
기술 투자 실기에 조직 관료화, 인재 이탈 우려까지 겹쳐

편집자주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 증시가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대표 수출주 삼성전자는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추락 중이다. 주식을 판다는 것은 미래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전쟁 후 폐허를 딛고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한 한국에 정작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희망이 없다'는 시장의 경고를 언제까지 외면할 셈인가.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초일류, 초격차'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 한국기업의 이름을 아로새긴 삼성전자가 심상찮다. 이러다 노키아나 인텔처럼 몰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당장 주가는 5만 600원으로 급락해 '4만전자'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지난여름 장중 8만 8800원까지 올랐던 것을 고려하면 약 4개월 만에 93.7% 하락했다. 시가총액은 228조 원이나 증발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이미 역사적 저점마저 깨고 0.92배로 낮아졌다. '청산가치'를 밑돈다.

국민주인 삼성전자 부진은 한국 증시 상징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시장 전체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코스피도 2417.08까지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경영진의 투자 실기 △기득권 고집 △인재 이탈 등으로 과거와 같은 기술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에 밀려 추격자 신세로 전락했고, 파운드리에서는 대만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외국인들이 외면했다는 판단이다. 실제 외국인은 지난 8월 이후 삼성전자를 17조 5715억 원 처분하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초격차 삼성이었는데…꼴찌 된 HBM, 왜?

연초 이후 SK하이닉스(000660) 주가가 28.44% 오르는 동안 삼성전자(005930)는 36.43% 하락했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앞서가고, SK하이닉스 주가가 뒤따라가던 것을 고려하면 완전 판이 뒤집혔다.

차이는 D램을 여러 개 쌓아 연결한 고성능 반도체 HBM에서 시작됐다. SK하이닉스가 AI를 주도하는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납품하다시피 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퀄테스트마저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완패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5세대 HBM3E의 엔비디아 공급과 관련해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앞서 HBM 공급을 자신했지만, 번번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라는 단어가 익숙하던 삼성전자의 초격차 주의가 무색할 정도다. 이같은 부진은 투자 실기가 이유로 꼽힌다. D램과 낸드 플래시 등 전통적인 메모리 제품이 글로벌 1위로,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에서 초기 HBM과 같은 새로운 기술 개발 투자는 '뒷전'이 됐다. 잘 나가는 D램과 낸드가 오히려 미래를 위한 파격적인 아이디어나 선제적 투자를 막는 '독(毒)'이 된 셈이다. 삼성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의 주요 경영진도 D램 개발실이나 설계팀 출신이 주류다.

실제 HBM이 처음 시장에 등장한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 경쟁력은 별 차이 없었다. SK하이닉스가 먼저 시제품을 개발했지만, 삼성전자는 2015년 말 업계 처음으로 HBM2를 양산했다. 그러나 2019년 HBM 투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삼성 경영진이 HBM 연구개발 전담팀을 해체했고, 공교롭게 SK하이닉스는 투자를 지속했다. 이때 삼성의 HBM 팀이 SK하이닉스로 대거 이직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전통 메모리는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에 직면했고, 파운드리는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파운드리 1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했지만, 지난 2분기 기준 점유율은 11.5%에 불과하다. TSMC는 62.3%에 달한다. 빅테크 기업들이 모두 TSMC에 물량을 맡기고 있다.

결국 삼성 기술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외국인들이 매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AI 반도체에서 뒤처진 삼성보다는 미국 엔비디아나 경쟁사인 SK하이닉스, TSMC가 더 낫다는 판단이다.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는 "반도체 자체의 경쟁력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며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아직 시그널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시 기술 격차를 다시 보여주거나, 경영진의 대폭 쇄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초사옥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영원한 1등 없다"…삼성이 노키아처럼 되지 않으려면

전문가들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삼성전자가 과거 성공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변화 속도가 늦어지고, 혁신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노키아도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면서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고, 심비안 운영체제(OS)를 고집하면서 주도권을 내준 바 있다. 삼성전자도 기존 잘 팔리는 상품, 기득권을 가진 쪽 위주로만 조직이 운영되면 언제든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일각에서는 과거 비서실과 미래전략실에 이어 사업지원TF가 그룹 전체를 컨트롤하면서 개별 경쟁력을 강화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도 있다.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투자하고, 다른 기업과 협력하며 주도권을 가져가야 하는데 그룹 지시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경쟁력을 강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교수는 "기업이 혁신하고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는 데 무사 안일주의로 가고 있다"며 "조직이 관료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컨트롤 그룹이라는 것을 없애야 독립적인 경영이 가능하다"며 "삼성은 지난 10년 사이 조직 문화를 바꿔야 했는데 실패했고, 이제 마지막 기회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인재 유출도 문제다. 최근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 등의 경력직 모집에 삼성전자 직원들이 대거 지원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인재 제일주의'로 성장해 온 삼성전자의 초격차 역시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사람이 그대로라면 조직 쇄신에 한계가 있다"며 "인재 영입과 활용이 삼성전자의 미래 모습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