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부터 이수페타시스까지…'밸류업 뒤통수' 못 믿을 상장사
특정 대주주 이익 위해 일반 주주 이익 침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대책 마련 '시급'
- 신건웅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시동 걸었지만, 일부 상장사는 오히려 역행하는 모습이다. 특정 대주주 이익을 위해 기업을 붙였다 떼며 일반 주주의 이익을 훼손했다.
증권가와 정치권에서는 밸류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장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편입된 이수페타시스(007660)는 지난 8일 장 마감 후 신주 2010만 주를 2만 7350원에 발행하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증자로 조달한 약 5500억 원 중 약 3000억 원을 이차전지 탄소나노튜브(CNT) 소재 전문 제조기업 제이오(418550) 인수에 투자할 계획이다.
증권가에선 이번 이수페타시스의 유상증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수그룹 계열사 중 이차전지 소재사가 있음에도 시너지를 기대하기 힘든 이수페타시스가 제이오를 인수하는 것부터가 의아하다는 지적이다.
당장 11일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7200원(22.68%) 하락한 2만45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수페타시스의 주주는 인공지능(AI) 기반 고다층기판(MLB) 기판의 고성장을 공유하기 위한 투자자이지 이차전지 투자자가 아니다"라며 "회사는 경영권 인수의 대외적인 이유로 사업다각화를 언급하고 있으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진행하는 만큼 투자자들의 공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투자 의견은 '매수'(Buy)에서 '중립'(Hold)으로, 목표가는 기존 5만 4000원에서 3만 2000원으로 40.7% 하향 조정했다.
마찬가지로 밸류업 지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고려아연(010130)은 지난달 30일 유상증자 계획을 기습 발표했다. 지난 10월 23일 1주당 89만원에 자사주 공개매수를 종료한 지 7일 만이다.
앞서 고려아연은 최윤범 회장 대 영풍(000670)-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분쟁에 자사주 공개 매수를 진행하며 밸류업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돌연 유통주식 수를 늘리는 무리수를 둔 셈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부정거래 혐의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밸류파괴'하는 자본시장 교란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주주에 대한 기업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주주의 충실 의무 도입'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 방침을 공식화했다.
두산로보틱스(454910)도 두산에너빌리티(034020)의 자회사인 두산밥캣(241560)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합병 및 주식교환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제동이 걸린 상태다.
두산밥캣 가치 저평가로 소액주주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수정을 요구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8일 5번째 정정신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두산의 구조 개편 과정에서 제기된 평가액 산정 방식 문제점에 대해서는 유관기관과 함께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며 "금융위든 시장이든 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기에 제도 개선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밸류업을 위해선 상장사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밸류업에 일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증시의 '밸류다운'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실제 코스닥은 연초 이후 수익률이 -15.89%로, 전쟁 중인 러시아를 빼고 꼴찌다. 코스피도 -4.66%로, 주요 선진국 중 최하위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 지수는 25.7%, 나스닥은 28.48% 올랐다. 일본 닛케이와 중국 상해종합지수도 각각 18.15%, 16.68% 상승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권 연구위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할 수 있는 그런 사건들이 지금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일반 주주들의 비용으로 특정 주주가 이익을 보는 방식의 의사결정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도 "기업들이 돈이 필요할 때만 일반 주주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며 "주주를 기업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어려운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밸류업에 역행하는 행태"라며 "바뀌어야 할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k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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