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걸려 기껏 만들었더니"…운용사 ETF 모방 상품에 '한숨'

운용사, 점유율 경쟁 탓에 ETF 모방 잇따라…제재는 어려워
투자자에도 '양날의 검'…"창의·혁신 ETF 상품 출시 막아"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150조 원을 넘어서면서 '카피캣(모방)'이 잇따르고 있다. 반년 가까이 애써서 신규 ETF를 내놓으면, 경쟁사가 점유율 확대를 위해 비슷한 상품을 따라 선보이는 식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품 종류가 많아지고 수수료는 내려가는 이점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창의 혁신 상품 출시를 막아 오히려 투자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키움자산운용은 지난 2014년 6월 'KOSEF 인도Nifty50 ETF'를 출시했다.

꾸준한 경제성장과 막강한 인구파워 등을 보유한 인도 시장에 개인이 직접 투자하기 어려운 것을 고려해 선보인 상품이다.

한동안 인도 시장에 투자하는 거의 유일한 ETF였지만, 지난해 4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이 연이어 동일 지수에 투자하는 상품을 내놨다. 운용 과정에서 미세한 차이를 뒀다고 하지만, 사실상 같은 상품에 가깝다는 평이다.

다른 상품들도 모방 상품 출시가 잇따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난해 6월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를 선보이자 경쟁사인 삼성자산운용은 지난 8월 'KODEX미국배당다우존스'를 내놨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지난해 3월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를 상장한 후에는 신한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이 관련 상품을 따라 만들었다.

최근 유행하는 커버드콜과 인공지능(AI) 테크·리츠 ETF 상품들도 마찬가지다. 한 운용사가 선보이고, 반응이 좋으면 다른 운용사가 여지없이 따라 출시했다. 일부 변형이나, 업그레이드가 있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제한적이다.

제품 개발 수고를 덜면서도 간편하게 검증된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모방 상품 출시로 이어지는 셈이다. ETF 순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모방 상품을 만들고, 수수료를 싸게 하더라도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목적도 크다.

그러나 반년 가까이 시간과 재원을 투자해 첫 상품을 출시한 운용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멘붕'이다. 경쟁사가 관련 상품을 모방한 후 수수료를 더 싸게 판매하면 피해가 크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상품 수익률이 아닌 운용자산으로 실적이 결정되다 보니 무조건 고객을 많이 유치하려고 한다"며 "이 과정에서 모방상품이 나오고 수수료 치킨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모방상품은 투자자 입장에서도 '양날의 검'이다. 상품 수가 늘어나고 수수료를 낮출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정적 요인이 크다.

모방 상품 출시가 이어지면 운용사들의 신규 상품 개발이 위축되고, 창의 혁신 상품 개발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유행 따라 비슷한 상품 가입 후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지난해 2차전지 ETF가 대표적이다. 전기차와 2차전지 열풍에 운용사들이 관련 ETF를 앞다퉈 모방해 내놨지만, 주가가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은 손실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상장 심사를 담당하는 한국거래소가 상장지수상품(ETP) 신상품 보호제도 개선안을 도입했다. 다만 내용의 모호하고, 규제 사항은 적어 실효성에 의문이 따라붙는다. 더욱이 거래소도 지수를 만들면 관련 ETF 출시를 운용사에 부탁해야 하는 처지라 이해관계를 무시하기도 어렵다.

운용사 관계자는 "돈이 달려있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모방상품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문제가 있다는 것은 다 알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거래소가 상장 심사를 더 철저히 해 모방 상품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