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밸류업 삼국지' 뜨거워도…투자자들은 "미국으로"[서학망원경]

경제회복 더딘 中·슈퍼엔저 우려 커진 日…주식 보관액 감소세
"밸류업보다 수익률"…'AI 붐' 미국, 상반기 주식보관액 29조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여의도 증권가. 2024.1.2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증시가 저마다 '밸류업'(가치 제고)에 힘쓰고 있는 가운데 국내 투자자들은 이들 시장에서 발걸음을 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돈을 뺀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로 떠났다. 더딘 경기 회복과 슈퍼 엔저(低) 현상, 비교적 낮은 수익률에 동아시아 대신 미국을 택한 것이다.

9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미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 1월 646억 9354달러(89조 4322억 원)에서 지난달 858억 1182만 달러(118조 7978억 원)까지 30% 이상 늘었다. 증가한 금액을 한화로 따지면 약 29조 원에 달한다. 엔비디아를 위시한 인공지능(AI) 밸류체인을 바탕으로 미국 증시가 약진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모습이다.

주식 보관액이 급증한 미국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6월 중국 주식 보관액은 8억 7407만 달러(1조 2100억 원)로 월간 기준으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억 달러를 상회했던 중국 주식 보관액은 올해 들어 억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 회복 조짐에 지난 3월 9억 9840만 달러(1조 3821억 원) 수준까지 회복했지만, 최근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일본 증시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달 일본 주식 보관액은 40억 4814만 달러(5조 6042억 원)로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 주식을 3089만 달러(427억 6411만 원) 순매도하며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으로 매도 우위를 나타냈다.

국내 증시에서도 투자자 예탁금이 줄고 있다. 연초 59조 4948억 원이었던 예탁금은 지난달 말 56조 5086억 원까지 3조원가량 증발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 시장에 투자하기 위해 증권사에 일시적으로 맡긴 대기성 자금이다.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시장이 아닌 다른 곳에 투자하기 위해 자금을 뺀 것으로 해석된다.

한·중·일 3국은 최근 '밸류업'을 통한 증시 부양에 힘써왔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중국과 한국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일본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상장사에 성장 계획 공시를 요구했고, 우리 금융당국도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기업 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독려해왔다. 중국도 주주환원 미비 기업에 제재를 예고했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밸류업 노력에도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로 떠나고 있다. 수익률이나 증시 전망이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긴 탓이다.

중국은 생각보다 더딘 경제 회복이 걸림돌이 됐다. 가장 최근 발표된 5월 산업생산은 전년 대비 5.6% 성장해 예상치와 전월 수치를 밑돌았다. 부동산 시장 위기도 계속됐다. 같은 달 신규 주택 가격은 전년 대비 4% 가까이 하락해 전월 대비 낙폭을 키웠다. 선전종합지수(-8.93%), 상하이종합지수(-1.34%)는 연중 하락했다.

일본에선 과도한 엔저 현상으로 증시가 압박받자, 투자자들이 비중 축소에 나서는 분위기다. 달러 독주에 엔화 가치는 38년 만에 최저인 160엔대로 추락, 환차손 우려를 키웠다. 가파르게 상승하던 일본 증시가 6월 들어 4만 대를 돌파하지 못하고 박스권에 머무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들어 닛케이 지수(22.51%)가 상승한 중에도 투자자들이 떠난 이유다.

코스피는 최근 들어 연고점을 연일 경신,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굳건한 믿음을 이기진 못하는 모습이다. 코스피는 올해 들어 7.04% 올랐지만, 나스닥(24.29%),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17.38%) 등 미국 증시 지수는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증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이어지면서 당분간 이러한 추세는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증시의 반도체, AI 붐 수혜는 지속될 것"이라며 "지난해 4분기 반도체 업황이 상승 국면에 진입했고, 올해 중반 출시되는 챗 GPT-5와 텍스트를 영상으로 변환하는 AI모델 소라 출시가 예정돼 미국 증시는 반도체, AI 붐을 디딤돌로 상방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seungh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