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K-증시 밸류업' 편승한 행동주의펀드가 위험한 이유

단기 주가 상승 효과 있지만…기업 미래 성장에는 부담
기업이 행동주의펀드 공격 안 당하도록 주주환원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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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한국 증시가 들썩이고 있다. 해묵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오는 26일 정책 발표를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 참여 확대도 거론된다. 지배구조 투명화, 주주환원 확대 등의 요구를 통해 기업 가치 상승은 물론 부의 순환까지 이뤄낼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기업가치 상승 정책을 펼친 일본도 경제단체와 기업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행동주의 펀드를 장려했다.

이미 한국에서는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늘고 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대상이 된 기업 수는 2020년까지 10곳 내외였지만, 2021년 20곳을 넘었다. 지난 2022년에는 50곳에 육박했다. 행동주의 펀드 요청이 주주총회에서 수용되거나, 안건으로 채택되는 일도 다수 나왔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밸류업에 도움이 될지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주주환원에 인색했던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지만, 단기 주가상승과 배당 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도한 배당과 자사주 매입 요구 등은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재원을 끌어 쓴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다음 달 15일 정기주주총회를 앞둔 삼성물산은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 등을 포함한 행동주의 펀드 연합으로부터 총 1조2364억 원의 주주환원 요구를 받았다. 이는 삼성물산의 지난해와 올해 잉여현금흐름(삼성바이오로직스 제외)의 100%를 넘어선다.

주주제안대로 현금이 유출되면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체 투자재원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이외에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제안을 한 금호석유화학, KT&G, 현대엘리베이터 등도 현금이 과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과도한 배당으로 기업의 미래 투자가 멈추면 한국 증시의 미래 역시 장담할 수 없고, 주주환원도 끊길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무리한 주주환원 요구를 경계하는 이유다.

행동주의 펀드에 '기업사냥꾼', '먹튀' 등의 오명이 따라붙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91년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의 SK텔레콤(SKT) 경영권 분쟁을 시작으로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가를 끌어올린 뒤 시세차익만 챙기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돌이켜 보면 한국 기업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은 그동안 주주가치 제고에 인색했기 때문이다. '동학개미 운동'으로 소액주주는 늘어났지만,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에는 무심했다.

기업도 이번 기회로 행동주의 펀드 공격 대상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전에, 주주환원을 위한 과감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증시의 진정한 '밸류업'은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와 주주환원책의 균형이 맞을 때 이뤄질 수 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