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30대 싱글맘 불법추심' 배경엔…구멍 뚫린 '채무자 대리인' 제도

상대 전화번호 없으면 신청 불가…지원 실적도 '3분의 1' 토막
뒤늦게 제도개선 나선 금융당국…결국 내년도 '예산 삭감'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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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불법 추심에 시달리던 30대 싱글맘이 어린 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나는 사건으로 '늑장 대응' 비판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불법 추심 피해자를 지원하는 '채무자대리인' 제도에도 구멍이 뚫린 것으로 파악됐다.

채무자대리인 제도는 빚 독촉에 시달리는 불법 추심 피해자의 정상적인 삶을 보존하기 위해 정부가 변호사를 지원하는 제도다. 대리인 선임 시 대부업체는 채무자가 아닌 대리인에게만 연락할 수 있다.

문제는 채무자대리인 신청 절차에 허점이 생기면서 실제 지원 건수가 연간 목표치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30대 싱글맘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뒤늦게 제도 개선에 나선 상태다.

3년간 '조기 소진'됐는데…올해는 3분의 1 토막

20일 금융위원회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채무자대리인 지원 실적'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1933건의 지원이 진행됐다. 이는 연간 목표치인 5965건의 32.4%에 불과한 수준으로, 이에 따라 예산 집행액도 전체 예산 12억 5500만 원의 31%만 집행됐다.

이는 지난 3년간의 실적과 대조된다. 지난 2021년~2023년 3년 동안은 채무자대리인 신청이 증가하면서 7~9월 예산이 모두 조기 소진됐다.

특히 금융당국은 올해 7월부터 채무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지인 등 관계자인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간 관계인 지원 실적은 총 6건, 지원 금액은 42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무자대리인 지원은 불법 추심 피해자들에게 의미가 상당하다. 통상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대리인을 선임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가족이나 친구에게까지 빚 독촉이 이뤄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정신적인 부담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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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전화번호' 없으면 채무자대리인 신청 불가

이처럼 올해 지원이 급감한 이유로 '신청 요건 미비'로 신청 자체가 반려된 문제가 꼽힌다. 채무자대리인은 채무자가 금융감독원에 지원을 신청하면, 금감원이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변호사 선임을 요청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채무자대리인 신청 시 '상대 전화번호'가 필수요건이었다는 점이다. 최근 불법 추심은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빚 독촉을 진행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 최근 불법 사채업자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SNS나 대포폰으로 피해자들과 접촉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로의 전화번호를 알 필요 없이 익명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대표적인 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불법 추심 피해자가 채무자대리인을 신청하더라도 SNS 아이디만 알고 있어 신청이 접수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나날이 변화하는 불법 추심 수법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뒤늦게 제도개선 나선 당국…결국 '예산 삭감' 소동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SNS를 통한 불법추심에 대해서도 채무자 대리인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언론을 통해 30대 싱글맘 사건이 알려졌고, 지난 12일 "불법채권추심을 척결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있던 이후에서야 제도 개선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채무자대리인 제도를 미리 개선해야 했다는 지적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라며 "법률구조공단의 현실적인 인적 자원의 한계 등 관계기관의 협의가 필요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채무자 대리인 선임 건수가 줄었다고 해서 피해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것은 아니다"며 "올해는 불법적인 대부 계약을 무효로 하는 소송 지원도 시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채무자대리인 지원에 배정된 예산 집행률이 저조하면서 내년도 예산이 삭감될 위기도 겪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2일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채무자대리인 지원 관련 2025년 예산을 전년 대비 5000만 원 감소한 12억500만 원으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양극화 시대에 불법추심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안일한 '늑장 대응'이 예산 삭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다만 금융위의 요청에 따라 지난 19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채무자대리인 관련 예산을 삭감하지 않고 13억500만 원으로 증액하는 방안이 의결된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무위 재논의를 통해 편성안보다 1억원을 증액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무위는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금융위는 2024년도에 편성된 예산 및 2025년도에 확정되는 예산이 적절히 활용돼 불법사금융으로 인한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 제도의 성과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ukge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