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낮춘 이복현, 은행권 개입 말고 '자율' 강조…김병환과도 '원 보이스'

"세밀한 메시지 못 내 국민과 은행에 불편"…13분간 백브리핑에 두 차례 사과
'은행권 페널티' 조치도 여지 남겨둬…"예단해 말하지 않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괸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를 마치고 백브리핑을 위해 자리 잡고 있다. 2024.9.1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누르기 위해 은행권을 상대로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국민들과 은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끝내 고개를 숙였다. 지난 4일 은행권을 상대로 '강한 개입'을 예고한 지 6일 만에 '은행권 자율'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가계부채 목표치를 초과한 은행에 더 강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부과하겠다는 방침도 "현 단계에서 예단해 말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가계대출 관련 문제가 생겨도 은행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던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메시지를 맞추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 "세밀한 메시지 못내 죄송"…두 번 사과한 이복현

이 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가계부채 관련 은행장 간담회'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가계대출 관리에 대해 조금 더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내지 못해 국민들과 은행에 불편과 어려움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원장은 13분 남짓한 백브리핑을 마무리하면서도 "저희의 정책 운영으로 소비자들과 은행이 불편하셨다면 다시 한번 송구하다"고 재차 사과했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이 원장이 던지는 가계대출 관련 메시지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은행권은 "가계대출 조여라", "금리 인상은 지양하라", "실수요자 보호하라" 등 메시지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대책을 쏟아냈지만, 은행별로 제각각 대책이 나오면서 소비자들에게 혼선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원장이 가계대출 관련 공개 석상에서 연일 은행권을 질책하면서 직접적인 '개입'을 예고해 관치금융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러나 이 원장의 이날 간담회 발언 및 브리핑에선 '강한 개입'보단 '은행권 자율'이라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가계대출 관리 문제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은행이 각자의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자율'에 방점을 뒀다. 모두발언에서만 모두 4차례 '자율'을 언급했다. 백브리핑에서도 3차례 정도 '은행 자율'을 강조했다.

그간 공개석상에서 대체로 은행권을 질책하는 데 무게를 둬 왔던 이 원장은 이날엔 "저희가 조금 더 긴밀히 은행권의 입장과 어려움을 소통하고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원장은 가계부채 연간 목표치를 초과한 은행에 '평균 DSR'을 낮추는 일종의 페널티를 부과하겠다는 방침도 "현 단계에서 예단해 말하지 않겠다"며 여지를 두는 모습이었다.

이 원장은 '은행별 DSR 한도 축소 방침에는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 "가계대출 관리는 상당한 정책 우선순위이며 어떠한 형태의 수단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현재 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가 시행됐기 때문에 그 이후 DSR 정책이 어떻게 될지는 지금 단계에서 예단해 말하기는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괸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를 마치고 백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9.1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원 보이스' 방점

이 원장의 이같은 입장 선회를 두고 금융권에선 그간 자신의 발언으로 시장 혼란이 반복되자 상급 기관인 금융위원회가 내는 메시지와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해석한다.

이 원장이 가계대출 관리에 있어 은행권의 '자율'을 강조한 것도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보조를 맞춘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일 경제·금융 분야 수장들 협의체인 이른바 'F4' 회의 직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개최하고 가계부채 관리와 관련해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확고하다"면서도 그 방식에 있어선 정부의 획일적 통제보단 "은행권의 자율적 관리"를 강조하면서 이 원장과는 다른 톤의 메시지를 낸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이 원장과 메시지가 다르다는 지적에 "금융위나 금감원에서 인식하는 것은 차이가 없다"며 "이 기조와 방침 하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 조율해서 메시지도 내고, 관리도 해 나가겠다"고 했었다.

이 원장도 이날 백브리핑에서 "가계대출 엄정 관리에 대한 정부나 당국의 기조는 변함이 없고, 은행의 각자 영업계획 포트폴리오 운영과 관련해 적절한 자율적 여신 심사를 통해 기조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은 감독원뿐 아니라 금융위 부처내 이견이 없다"고 강조했다.

◇ 은행권, 투기대출 제한에 '집중'…"실수요 피해 최소화 노력"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은행장들은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 자체 수립한 연간 목표치 내에서 가계대출이 관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대부분의 은행은 공통적으로 다주택자(2주택자 이상) 등 투기수요로 보이는 대출에 대해 심사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미 가계대출 경영계획을 초과한 은행의 경우 다른 은행들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또 갭투자에 활용될 수 있는 전세자금대출, 유주택자의 추가 주택 구입뿐만 아니라 '신용대출'에 대해서도 심사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은행들은 "실수요와 투기수요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만큼 심사기준은 은행별로 상이할 수밖에 없다"며 "실수요자 전담 심사팀을 운영해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은행권 가계대출 관리 대책으로 시장 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이제까지 모든 은행이 동일하게 감독 당국의 대출 규제만 적용하다 보니 은행별 상이한 기준에 익숙하지 않아 발생한 결과"라며 "자율적인 가계대출 관행이 자리 잡기 위해서 반드시 현시점에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ukge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