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내몰면 안돼" 무너진 '대출사다리'…'시장의 힘'으로 해결해야

[불법사채와의 전쟁]②정책대출 확충 만으론 서민금융 수요 감당 못해…최고금리 높여야
"이자 높더라도 제도권 자금조달 기회 주는 것이 중요"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한유주 기자 = 정부의 불법사금융 척결 대책은 예방을 위한 정책대출 확대, 후속 피해를 막는 처벌과 환수로 요약된다.

하지만 금융권과 학계에선 한계가 크다고 보고 있다.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 불법 사금융으로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상황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너진 대출 사다리 회복을 위해 시장 상황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연동형 최고금리제를 대안으로 꼽는다.

◇ 무한정 늘릴 수 없는 정책대출…시장 역할 키워야

전문가들은 저신용차주들이 처음부터 불법사금융 시장에 진입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감당할 수 없는 고금리가 계속 쌓이고, 최근에는 '인권 유린'이라 불릴 만한 불법 추심 피해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응은 서민 생계금융을 위한 정책 대출 확대에서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3월 출시된 '소액생계비 대출'이다. 대부업조차 이용이 어려운 취약계층을 상대로 최대 100만원을 당일 지급하는 상품인데, 예상 밖 흥행에 정부당국자들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같은 정책 대출은 예산의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내년도 소액생계비 대출을 위해 1500억원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적인 예산 확보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도 대출은 은행권의 기부금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올해도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으로 조기 소진이 예상되자 640억원의 재원을 추가로 확충했다. 이를 고려하면 내년도 사업 역시 불확실성이 커진 셈이다.

금융권에선 정책금융으로 풀기엔 한정된 재원 등 여러 한계가 있는 만큼 시장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부업체와 2금융권의 공급 여력을 키워 대출 수요를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1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불법 사금용 집중수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경기도공정특별사법경찰단이 압수한 증거품을 공개하고 있다. 2022.7.13/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 서민 위한 '법정 최고금리제'…금리 오르자 대출 기회 앗아가

이런 한계에 나온 대안이 시장금리에 법정 최고금리를 연동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이다.

현행법에선 법으로 허용하는 최고금리가 연 20%로 고정돼 있다. 2002년 대부업법 개정으로 마련된 법정최고금리는 지난 20년간 총 7차례 인하됐다. 가장 최근의 조정 사례는 지난 2021년으로 기존 연 24%에서 현 20%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서민들의 고충이 커진 시기였고 저금리 기조도 맞물려 시장의 기능을 크게 해치지 않았다. 오히려 금융사들이 과도하게 마진을 형성하는 것을 막고 최고금리에 근접한 이자를 지불하던 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정책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기준금리가 다시 오르며 상황이 달라졌다. 금융사들의 조달비용이 증가하며 서민들이 자주 찾는 카드론, 대부업 소액대출 금리가 법정 최고금리 20% 문턱 가까이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경기 악화로 대손비용까지 늘자 금융사들은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저신용자들에 대해선 아예 대출 문을 닫게 됐다. 서민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좋은 취지가 되레 서민들의 대출 기회를 박탈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의 '연동형 최고금리 체계 도입의 필요성'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법정 최고금리가 연 27.9%에서 24%로 인하되면서 서민들의 대부업 이용 규모도 현저히 떨어졌다. 2017년말 대비 2022년말 대부업 신용대출 규모는 45%(5조6000억원), 대출 이용자는 60%(148만명) 감소했다. 대부업이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임을 고려하면 대부업 이탈 인원이 불법사금융으로 유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 법정최고금리 뛰어넘는 조달금리…"연동형 최고금리제 도입해야"

이에 금융권과 학계에선 대부업권에 한정해서라도 연동형 최고금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시장금리에 최고금리를 연동시키는 방식인데, 금융당국도 연초까지는 금리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도입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법정최고금리 수준이 높아지면 서민차주들의 어려움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상당해 논의가 멈춘 상황이다.

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연동형 최고금리제를 도입할 경우 올해 6월 기준 대부업권 법정최고금리는 최소 24.6%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의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대부업 이용 차주의 1인당 평균 신용대출액은 905만원이다. 현재 법정 최고금리 상한인 연 20%를 적용하면 차주가 부담해야 할 한달 이자는 15만800원이다. 만약 연구 결과에 따라 최고금리를 연 25%로 인상할 경우, 단순 계산으로 월 이자는 3만7700원 늘어나는 데 그친다. 반대로 금리 인상기로 대부업권에서 밀려나야 했던 불법사금융 차주들이 다시 제도권 금융에 유입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서민 차주들에게 부과되는 이자 수준은 다소 늘겠지만 전문가들은 저신용자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탈락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수천%에 달하는 금리를 부담하느니, 제도권 안에서 자금을 조달할 기회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법정최고금리를 상회하는 원가금리로 대부회사가 시장에서 이탈되고 있다"며 "고정형 법정최고금리 체계가 저신용자의 금융접근성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금리 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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