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20만원이 없어서"…알고도 '불법사금융' 늪에 빠지는 저신용자
[벼랑 끝 저신용자]① "당장의 생계비 때문에 불가피하게"
고금리로 대부업권 영업타격…신용대출 '뚝'
- 한유주 기자, 서상혁 기자
(서울=뉴스1) 한유주 서상혁 기자 = # 체육시설을 운영하던 40대 A씨는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다. 생활비까지 끊긴 A씨는 길거리 전단을 통해 알게 된 일수업체에 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금방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리두기 연장으로 휴업이 장기화됐고, 처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일수업체 3곳에서 재대출과 추가 대출을 반복해 상환금과 이자는 1100만원까지 불어났다.
#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40대 B씨 역시 코로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줄어든 소득을 메울 수 있는 선택지는 불법 사채뿐이었다. 생활비를 위해 받았던 첫 대출을 갚기 위해 이자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1년간 사채를 5차례 이용하게 됐다. 총 397만원을 대출받은 B씨가 갚은 이자와 원금은 총 782만원. 원금의 2배 가까운 금액을 갚았지만 업체는 추가로 115만원을 더 입금해야만 끝을 맺을 수 있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고리대 불법사금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알고도' 돈을 빌린다. 서민금융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돈을 빌릴 때 불법 사금융업자임을 알고도 빌린 비율이 77.7%에 달했다.
여러 곳을 전전해도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개인회생 중이거나 이미 금융권에 다른 대출이 있어 제도권 안에선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충당할 수 없는 이들이 상당하다.
불법사금융 피해는 크게 법정최고금리를 크게 웃도는 고리대와 과도한 추심 피해로 나뉜다. 법상 최고금리인 20%를 넘는 대출계약은 무효이지만, 소비자들이 이를 알지 못했거나 인지하고도 협박성 추심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상당하다. 지인이나 가족, 회사에 채무연체 사실을 알리겠다며 일상을 초토화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 20만원 생활비 때문에 연 2000% 불법사금융에
"제 발로 들어간 거다" "갚을 능력도 없는데 왜 돈을 빌려"라고 말하기엔 이들의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경우가 많다. '빚투' '과소비'라는 단어가 쉽게 묶이지만 긴급하게 몇십만원의 생계비가 없어 유입되는 이들이 상당하다. 불법사금융 시장의 정확한 규모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저신용자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소액생계비대출'이 유례없이 흥행한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연체 이력을 따지지 않고 급전을 대출해주는 '소액생계비대출'에 지난 2개월간 총 4만3549건의 신청이 접수됐다. 평균 대출금액은 62만원으로, 월 최저임금 201만원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각종 증빙서류와 깐깐한 심사가 요구되는 제도권 금융과 달리 너무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점도 불법사금융 피해를 키운다. 최근에는 SNS나 포털 광고가 불법사금융 유입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부금융협회가 2020년 발간한 60건의 불법사금융 피해 상담 사례 중 45%에 해당하는 27건이 대출중개사이트를 이용한 사례로 나타났다. 가장 큰 대출중개사이트의 경우 올 6월1일부터 9일까지 작성된 대출문의건이 3676건에 달한다. 이곳에는 당장 20만~30만원이 없어 대출을 받겠다는 글이 상당하다.
# 생활비 40만원이 필요했던 김모씨는 대출중개사이트에 대출 문의 글을 올렸다. 5분 만에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40만원을 대출해줄 테니 일주일 뒤 60만원으로 갚으라는 조건이었다. 계산해보면 실제로 연 2607%에 달하는 이자율이었다. 여기에 연체 시에는 12만원의 수수료과 부과된다는 조건도 붙였다. 가족과 지인의 연락처까지 요구했다. 상황이 급했던 김씨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돈을 빌렸다. 일주일 뒤 상황이 급변했다. 김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가족에게 채무 연체 사실을 알리겠다며 매일 폭언과 협박을 일삼았다.
◇ "불법사금융 뿌리 뽑는다"지만…대부업체는 저신용자 문턱 높인다
불법사금융 피해규모는 증가 추세인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지난해 접수된 6만506건의 피해신고 중 미등록대부, 최고금리 초과, 불법채권추심 등 불법대부 관련 피해신고가 전년 대비 1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불법사금융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올해도 총력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국무조정실을 필두로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법무부·경찰청·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은 지난해 8월부터 '불법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10월까지 '불법사금융 피해 특별근절기간'을 운영하고 확인된 불법사금융 범죄에 대해선 수사 기관에 신속하게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경찰청과 지방자치단체, 금융감독원과 협업해 불법금융광고에 이용된 전화번호의 이용 중지, 불법대부광고 차단 조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 온라인을 활용한 불법사금융 피해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번호 이용 중지 조치를 보다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에 더해 온라인과 대중 시설을 통해 불법사금융 피해 예방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법사금융 피해는 점차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21년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낮아진 가운데, 한국은행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2금융권과 대부업계가 대출 공급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부업권 관계자는 "조달비용이 늘면서 신용대출은 거의 줄이고 담보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버티는 경우가 늘었다"며 "대부업체에서 이탈된 사람들이 어디서 돈을 구하겠느냐"고 말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의 '2023년 저신용자 우수대부업체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 대출을 신청해 거절당한 응답비율이 68.0%로 1년 전(63.4%)에 비해 상당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업체 거절 이후 필요한 급전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율 역시 52.9%로 전년(50.6%)대비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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