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 세계 최대 비상장회사의 지배구조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프랑스의 푸조패밀리는 딸들에게 회사 주식이 가지 못하도록 가족 내에서 조치했다. 여기에는 법률적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가족은 많지 않다. 그러나 포르쉐패밀리의 경우처럼 창업자의 친손자들과 외손자들이 대립하는 나쁜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어 이 문제는 쉽지 않다. 또, 외손자가 회사를 맡는 데는 다들 별 반감이 없지만 사위는 다르다.
세계 최대의 농업·식품회사인 미국의 카길(Cargill)은 두 패밀리가 잘 융화된 대표적인 사례다. 상징적인 인물이 회사의 CEO였던 카길 맥밀런(Cargill McMillan, 1900~1968)이다. 카길 맥밀런은 창업자의 외손자였는데 모친의 성을 이름으로 가졌던 재미있는 사례다. 본인이 자기 이름을 지었을 리 없으므로 부모가 두 패밀리의 결합을 상징하기 위해 그런 이름을 지은 것 같다.
카길 맥밀런의 부친 존 맥밀런은 장인(창업자 윌리엄 카길) 사후 1909년부터 1936년까지 CEO를 맡아 회사를 성장시키고 위기에서도 구해낸 사람이다. 카길 집안과 맥밀런 집안은 같은 동네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어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놀면서 자랐다. 사실 창업자 윌리엄 카길은 메리 맥밀런과 혼인했기 때문에 두 집안은 겹사돈이었던 셈이다. 카길 맥밀런은 부친의 사후에 회사를 이어 맡았다.
카길은 창업자가 1865년에 아이오와에서 곡물저장창고 한 채로 출발했던 회사다. 카길패밀리와 맥밀런패밀리가 공동으로 지배한다. 약 50명의 후손이 회사 지분의 85%를 보유하고 있는데 나머지는 경영진과 우리사주조합원들이 보유하고 있다.
카길은 비공개 가족기업이다. 매출 기준으로 세계 20위권에 드는 회사다. 종업원 수도 약 15만 명이다. 이렇게 큰 회사가 비공개로 지속될 수 있는 것은 회사의 이익을 거의 다 재투자했다는 의미다.
카길은 비공개회사일 뿐 아니라 회사의 경영방침 중 하나가 ‘기밀’이라고 한다. 그래서 회사의 지배구조와 재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카길을 ‘보이지 않는 거인’이라고 하는 이유다. 여기에 대해 세간의 비판이 쏟아지자 카길은 1995년 이래로 분기보고서, 연차보고서를 대충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2018년 연차보고서도 큼직한 사진들만 잔뜩 넣은 24페이지짜리다.
2005년에 카길 지배구조에 큰 사건이 발생할 뻔했다. 창업자의 손녀 마가렛 카길(1920~2006)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고 회사 주식 17%를 출연해 놓았는데 재단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었든지 카길을 기업공개하면서 보유 주식을 매각하고 싶어했다. 회사의 이사회는 여기에 반대했다. 그러나 동기도 훌륭했을 뿐 아니라 고령 최대주주의 희망을 묵살할 수만은 없었다. 마가렛 카길은 생애 통산 약 2억 달러를 여러 단체에 익명으로 기부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카길이 가지고 있는 자회사들 중에 유일하게 상장회사인 모자익(Mosaic) 주식과 재단이 가지고 있는 카길 주식을 교환하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2011년에 카길 보유 모자익 주식 64%가 재단의 카길 주식과 교환되었는데 평가액은 243억 달러였다. 이로써 카길은 계속 비공개회사로 남을 수 있었다.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는 않는다. 2016년 기준으로 이사회가 17인의 이사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가족은 카길 1인, 맥밀런 4인이다. 현재 경영진 중에는 가족 구성원이 아무도 없다.
카길 사례에서 보이듯이 비상장 가족경영기업과 공개된 대기업의 차이는 그 자체 누가 회사의 경영자가 되는가의 기준이 아니다. 비공개 회사라고 해서 효율적인 지배구조의 필요가 공개회사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 투자자들이 없어 투명성의 요구가 낮을 뿐이다. 국내에서도 비상장 계열회사에 상장회사 수준의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그룹들이 있다. 미래의 상장에 대비하는 의미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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