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회삿돈으로 회장님 경영권을 방어하나요?"[강은성의 뉴스1픽]
- 강은성 기자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주주총회 시즌이던 지난 2022년 3월, 국내 A기업 주주총회장에는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행동주의펀드를 필두로 한 소액주주 연대가 오너 일가의 방만 경영과 회사 이익의 부적절한 배분 등을 놓고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며 경영진 교체 등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소액주주의 결집이 쉽지 않다지만 기관투자자들이 소액주주 편에 서며 '해 볼만한 싸움'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주총회 결과는 오너일가의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소액주주의 표결집이 부족했냐고요? 아니었습니다.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백기사'가 등장하며 오너일가의 손을 들어준 것이 승패를 갈랐습니다.
A기업은 소액주주 연대가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이 일고 있는 와중에 B 기업과 '지분교환'을 했습니다. 두 회사의 경영진은 손을 맞잡으며 '양사 사업 시너지와 미래를 위한 협력'이라며 활짝 웃는 사진을 보도자료로 배포했습니다.
교환한 지분은 오너일가의 보유지분이 아니라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였습니다. 자사주는 회사가 잉여자금으로 매입한 자기주식입니다. 이 주식을 회사가 보유하고 있으면 시장에서 유통할 수 있는 주식수가 감소해 주가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만으로도 주주환원이 이뤄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소각까지 이뤄져야 실제 환원이 되지만 말이죠.
그런데 A기업은 회삿돈으로 사들인 자사주를 지분교환을 통해 B기업에 넘겼고, B기업은 주주총회에서 오너일가의 손을 들어주는 의결권을 행사했습니다.
자사주는 상법 제 369조1항에 따라 의결권이 없습니다. 회삿돈으로 아무리 주식을 산다한들 주주총회에서 회사가 '회장님'에게 유리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권에 부여된 대부분의 권리가 자사주에 대해서는 대부분 정지됩니다.
그런데 지분교환을 통해 타사로 주식을 넘기면 더이상 '자사주'가 아니죠. 당연히 의결권도 부활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백기사'라는 용어도 등장한 것이죠.
'자사주의 마법'은 인적분할을 해 새로 설립하는 회사(신설법인)에 대해 신주를 배정하는 과정에서 자사주에도 신주를 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사주의 마법으로 경영진이나 오너일가가 신설법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인데,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측면이 있어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최근 견제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지분교환을 통한 의결권 부활은 '자사주의 마법'만큼이나 오너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임에도 제대로 된 견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금융위원회는 회삿돈으로 매입하는 자사주가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사주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그 기저에는 자사주를 시가총액의 일부로 인식해 언제든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주주가치를 훼손할 용도로 악용할 수 있다는 관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가 손을 대고 싶어하는 부분도 이 대목으로 보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자본시장은 물론 전세계 어느 곳도 '자사주'를 시가총액에 포함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삼성그룹의 일종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의 경우 자사주를 전체 지분의 13%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삼성물산 시가총액은 13일 종가 기준 20조1738억원인데 2조6225억원어치가 자사주인 셈입니다.
즉 삼성물산 시총에서 자사주 물량 13%를 제외한 17조5513억원을 미국이나 일본 등 글로벌 자본시장은 '진짜 시가총액'이라고 인식한다는 겁니다. 이를 유동주식시가총액이라고도 부릅니다. 만약 삼성물산이 1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다면 시가총액에서 1조원이 즉시 감소합니다. 굳이 '소각'을 하지 않더라도 시가총액이 감소하니 소각과 동일한 효과입니다.
자사주의 마법이니, 지분교환을 통한 의결권 부활이니 하는 것들도 '유동주식 시가총액'으로 변경하면 굳이 규제를 만들 필요조차 없습니다. 아예 원천 차단되는 것이니까요.
삼성은 1등기업 답게 '경영권 승계는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이후로 꾸준히 자사주를 소각하고 있습니다. 삼성물산도 최근 보유 자사주 13%를 전량 소각한다는 방침을 밝혔고요.
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00대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 규모는 31조5747억원에 달합니다.
이를 모두 소각한다면 해당 기업의 주주들은 반색하겠죠. 주가가 오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기업들이 보유한 물량을 소각하지 않고 시장에 내다팔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대량매물이 쏟아지게 되고, 시장은 이로 인해 주가가 급락하는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오버행'이라고 하는데요, 잠재적 대량 매물 우려입니다.
실제로 전경련과 상장사협의회 등 주요 경제단체는 금융당국의 자사주 제도 개편에 강하게 반발하며 오버행 우려를 제기합니다.
전경련은 자료에서 "자본시장법 개정 등으로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면 기업들이 규제 강화 등에 대비해 보유 물량을 대거 시장에 풀어 소액주주들이 주가 하락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등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사주는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마저도 정부가 규제한다면 기업의 경영권이 외국 자본 등에 약탈될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전경련의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미국은 차등의결권을 통해 창업자가 일반투자자의 몇배 권한이 큰 의결권을 갖기도 하니까요.
우리 정부도 최근 벤처-스타트업 등에 대해 제한적으로 차등의결권을 인정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아직 주요 기업은 차등의결권을 꿈꾸기는 언감생심입니다.
다만 이 대목에서 한가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회장님의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데 '회삿돈'을 사용하면 안되겠죠. 기업공개(IPO)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주주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상장'을 했고, 그 돈으로 기업을 영위한다면 회삿돈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여태까지의 관행이 분명히 잘못된 행태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경영권 등과 관련한 기업의 애로상황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 "균형 잡힌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한바 있습니다.
유동주식 시가총액과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다소 급진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제도보다는 인적분할 시 신주배정 금지 및 지분맞교환 금지, 그리고 자사주 보유비율 제한 등을 금융위는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많이 아프고, 주주입장에선 '성에 차지않는' 개선이 될 수 있겠지만 한발한발씩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보입니다.
esth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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