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히 존재해온 '상장피', 개미만 당했다[코인 시세조종 잔혹사]①
2022년까지 거래소 '상장피' 일반적…거래소마다 '브로커' 있어
코인 프로젝트, 거래소 요구사항 맞추려 MM팀에 시세조종 의뢰하기도
- 박현영 기자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가상자산(암호화폐)을 상장해주는 대가로 수십억원대 '뒷돈'을 받아챙긴 코인원 전 상장팀장의 실형이 지난달 13일 확정됐다. 코인원 전 상장 총괄이사 전모 씨와 전 상장팀장 김모 씨는 각각 징역 4년, 징역 3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두 사람은 2020년부터 2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뒷돈을 받고 '부실 코인'들을 상장해준 혐의를 받아왔다.
뒷돈을 받고 '부실 코인'들을 상장해줄 경우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상장이 곧 시세조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업성도, 개발 능력도 없는 부실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이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시세조종뿐이다. 애초에 큰돈을 주면서까지 거래소에 상장하려는 것도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려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목적이다.
전모 씨와 김모 씨가 상장을 진행하던 시기, 당시 코인원을 이용하던 투자자들은 그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검찰은 전 씨와 김 씨의 재판에서 그들이 상장시킨 여러 시세조종 코인들 중 하나로 '퓨리에버 코인'을 꼽았다. 조사 과정에서 퓨리에버 코인은 투자자 6000여명에 210억원 상당의 손실을 안긴 것으로 밝혀졌다.
'퓨리에버'는 사내에 개발자조차 없는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퓨리에버 코인은 코인원에 신규 상장됐던 2020년 11월 13일 2700원대에서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2020년 12월 21일 1만1600원대 가격을 기록했다. 이렇다 할 호재가 없었음에도 한 달 만에 4배 넘게 오른 것이다. 가격은 이내 폭락했고, 피해는 개미 투자자들의 몫이었다.
◇시세조종으로 이어지는 가상자산 거래소 '상장피'
전 씨와 김 씨가 받아 챙긴 뒷돈은 가상자산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이른바 '상장피(fee)'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태동한 2017년부터 상장피는 업계의 공공연한 골칫거리였다.
지난해 검찰 수사를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까지 상장피는 '낸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는 돈'으로 통했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코인을 상장하고 싶은 코인 발행사들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상장피를 요구받았다고 주장해왔지만, 거래소들은 '받은 적 없다'고 잡아떼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코인 시장이 무법지대로 치닫게 된 배경이다.
상장피 수수가 시세조종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코인원 사례처럼 상장 담당자나 브로커가 뒷돈을 받고 사업성이 없는 코인을 상장시켜주는 경우가 있었다. 해당 코인을 발행한 프로젝트들은 이미 '상장피'를 썼기에 그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코인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고, 상장피를 수수한 브로커들은 이를 묵인했다.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코인 발행 프로젝트들은 '마켓메이킹(MM) 팀'이라고 불리는 시세조종업자들에게 시세 조작을 의뢰했다. MM팀이 가격을 큰 폭으로 끌어올리면 이 과정에서 일반 투자자, 일명 '개미 투자자'들이 해당 코인에 투자하게 된다. MM팀은 코인 발행 프로젝트로부터 받은 코인들을 고점에서 모두 매도해버리고, 그 피해는 개미 투자자들이 떠안았다.
이는 상장피가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다. 이 같은 경우와 달리, 상장피를 공개적으로 받지 않기 위해 '디파짓(보증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받는 거래소들도 있었다. 거래소들은 코인을 상장해주며 코인 발행 프로젝트들에게 디파짓을 받고, 상장된 코인이 일정 수준 이상의 거래량을 유지하면 디파짓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거래소 입장에선 거래량이 많은 코인을 상장해야 거래 수수료로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인 발행 프로젝트 입장에선 거래량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디파짓을 받을 수 없다. 이에 디파짓을 돌려받기 위해 MM팀에 시세조종 또는 자전거래를 의뢰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경우에도 피해는 고스란히 개미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다단계-MM까지 연결…"현재는 해외 거래소로 이동"
업계 관계자들은 상장피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2년 전까지 대부분 거래소에서 이 같은 관행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 중 한 곳에서 근무했다는 A씨는 "주요 거래소마다 상장 브로커 역할을 하며 상장피 납부, MM 절차를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또 "코인 발행사들이 상장 이후 MM팀에 시세조종을 의뢰하는 과정이 '코인 다단계'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MM팀은 시세조종을 위해 다단계 업자를 고용하기도 했다. 다단계 업자들이 메신저 텔레그램에 '코인 리딩방'을 만들고, 특정 코인의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며 일반 개미 투자자들을 모집하는 식이다. MM팀은 일반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코인 발행 프로젝트로부터 따로 돈을 받아왔다.
현재는 '테라 루나 사태' 이후 국내 규제가 강화되고, 국내에서 상장피 및 시세조종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이런 MM팀들이 해외 거래소로 이동한 상태다.
2020년부터 국내에서 MM팀으로 활동해왔다는 B씨는 "요즘 여러 국내 MM업자들이 조사를 받거나 구속되고 있어 국내에서는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국내 거래소를 쓰더라도 대부분은 거래소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거래량을 맞추기 위해 유동성 공급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는 해외 거래소인 후오비, 게이트아이오, MEXC, 엘뱅크 등을 이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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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초의 법률인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오는 19일부터 시행된다. 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그간 ‘무법지대’였던 코인 시장에서 불공정행위가 금지된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 당국은 가상자산 시장의 시세조종은 물론, 단순히 유동성을 공급하는 ‘마켓메이킹(MM)’도 엄격히 금지한다고 못박았다. 문제는 가상자산 시장이 태동하던 2017년부터 현재까지 성행했던 코인 시세조종을 새로운 시스템으로 걸러낼 수 있는지다. 이에 그간 코인 시세조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조명함으로써 법 시행 이후 시스템 확립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