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모던록'…'가왕' 조용필, '앞서가는 음악 신화' 계속된다 [칼럼]

가수 조용필 ⓒ News1 황기선 기자
가수 조용필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홍성규 대중가요평론가 = 가왕 조용필의 '앞서가는 음악' 신화는 계속되는 것인가.

나는 1980년대 후반부터 16년간 스포츠 신문 연예부 기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햇병아리 가요 기자 시절, 슈퍼스타 조용필을 처음 만나, '용필이 형'이라 부르며, 수많은 인터뷰와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1988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조용필은 나와 인터뷰 도중 불현듯 "가수의 생명은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한발 앞서가는 음악'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화두는 오래도록 내 가슴속에 남아 있었고, 이번 조용필의 20집 컴백 새 앨범으로 다시 한번 가슴을 울리고 있다.

타이틀곡 '그래도 돼'는 기존 브리티시 모던 록에 '조용필 표' 한국적인 '정(情)'을 심어, 한국형 'K-모던록'의 전형을 제시한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용필이 형'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만의 앞서가는 음악 철학을 고수하며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그래도 돼'는 모던록 특유의 섬세하게 찰랑거리는 기타 사운드와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 '용필 오빠'의 따뜻한 노랫말이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진다. 한두 번만 들으면, '대중적이 아니다', '밍밍하다'는 반응이 나온다고도 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56년 가요계를 관통하며 켜켜이 쌓여온 조용필만의 내공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부응하듯 수십년간 '용필이 오빠'를 연호하며 그의 곁을 지켜온 중장년 팬들은 물론, 조용필을 처음 접한 20·30세대까지 감동하고 있다. 뮤직비디오와 함께 이 노래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른다고 한다. 슬픔의 감정을 다 토해내지 않고, 최대한 절제된 감성이 오히려 더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동서양이 조화를 이룬 글로벌 감성으로 팝의 메카 영국, 미국, 유럽 시장까지 진출하길 진심 기대해 본다.

'앞서가는 음악'이라는 명제는 36년 전 당시 가요 전문 기자였던 내게 조용필이 "이 노래 어때"하며, 몇곡의 데모곡들을 들려주던 자리에서 처음 나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자리에서 들어본 '추억속의 재회'와 '꿈'은 이전까지의 '창밖의 여자'나 '비련'처럼 절규하듯 토해내는 한국형 록 발라드가 아니었다. 팝 음악처럼 세련되고 최대한 감성을 절제한 실험적인 곡들이었다. 당시 '성인가요' 팬들에게는 적잖이 낯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용필에게 "웰메이드 팝 음악을 듣는 것 같다, 너무 고급스럽고 절제미가 뛰어나다, 이제 우리 가요계에서도 이런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진심의 찬사를 보냈다.

조용필은 이후의 행보에서도 늘 '앞서나가는 음악'을 연출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팬들의 기대감이 큰 만큼, 매번 신곡 앨범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일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20집 앨범도 예외가 아니었다. 36년 전 '용필이 형'의 말이 또 다시 머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가수 조용필 ⓒ News1 황기선 기자

조용필은 최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옛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집 컴백 콘서트 현장에서도 '앞서가는 음악'의 신념을 나타내듯 신곡 '그래도 돼'로 관객들을 뜨겁게 감동시켰고, '추억속의 재회'와 '꿈'으로 앙코르 피날레를 장식했다.

조용필의 '앞서가는 음악'의 에너지는 어디서 솟아 나오는 걸까. 그 해답은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다지고 다져진 그의 음악사에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

최근에 오래전 조용필과의 소중한 기억을 되살려, 평전 '청춘 조용필'을 출간했다.

단순 라이프 스토리가 아니라, 기적처럼 이어지는 조용필의 '앞서가는 음악'을 재조명하기 위해서다. 지난 2022년, 2023년부터 20집 앨범이 한 곡 한 곡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36년 전 약속의 신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조용필은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음악을 하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출, 무명 밴드로 파주, 문산, 동두천 지역 미8군 클럽 무대를 전전했다.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대였지만, 그 시절 그 장소는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여들었고, 최첨단 팝음악 문화의 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클럽 무명밴드의 가수 겸 기타리스트 조용필은 악보가 없다 보니, 매일 청음(聽音)으로 팝 음악 악보를 따고, 밤새도록 연습하며 전천후 뮤지션으로 실력을 키워 나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후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1980년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를 앞두고는 득음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전국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목에 피가 날 때까지 판소리를 익혔다.

이 무렵 조용필은 당시 클럽가에서 쟁쟁하던 최고의 실력파 연주인들로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며, 뮤지션으로서 앞서가야한다는 신념을 가속했다

이후 조용필은 국내시장 성공이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대망의 일본 가요계로 진출, 1980년대 일본 열도를 완전히 접수한다. 당시 일본은 전 세계 2위의 대중음악시장으로 앞서가는 영미 팝음악들이 아시아권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조용필은 그런 곳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한국 전통의 정서가 가득 서린 '혼의 목소리'로 일본 관객들을 울렸다. 또한 영미 팝을 기반으로 한국 전통가요, 일본 엔카, 제이팝, 제이록까지 온몸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무기로 재창조한다.

이후 1990년대 초 12집 앨범 '추억속의 재회'와 13집 '꿈'은 1980년대의 일본 시장을 넘어서, 글로벌 영미 팝 시장을 겨냥한 새출발 선언이었다. 1993년에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재결성되며, 밴드 음악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국내 최초로 공연장에 무빙 스테이지 등 첨단 장비를 도입했고, 매 공연마다 새로운 편곡으로 국내 최고의 무대를 연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3년 1월 조용필은 아내와의 사별이라는 극한의 슬픔과 절망을 겪으며, 오래도록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2013년 19집 앨범 '바운스'(Bounce)와 '헬로'(Hello)가 나왔다. 컨트리록, 일렉트로니카가 가미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가왕이 귀환한 것이다.

이제 또다시 11년이 흘러 20집 새 앨범이 나왔다. 조용필의 신화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2024년 '그래도 돼'와 1990년 '추억속의 재회', 1991년 '꿈'사이에 30년이 넘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앞서가는 음악'이라는 공감대가 또다시 음악 팬들의 가슴을 달군다.

조용필은 과거에 가끔 콘서트 현장 대기실을 찾아가면, 발성 연습을 하다가, 숨을 몰아쉬며 "내가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 것 같냐"고 조금은 힘든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열정적으로 공연을 마무리하곤 했다. 이번 컴백 콘서트에서도 120분간 논스톱 29곡 열창의 무대를 펼치면서 관객들에게 "이 나이에 이렇게 할 수 있나요"라고 외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뉴트로는 복고 콘텐츠에 날로 새로운 꿈을 덧입는 이 시대의 트렌드다. 추억팔이에 멈추는 '레트로'(retro)와 차원이 다르다. 조용필은 이 시대의 진정한 '뉴트로'(new-tro) 아티스트다.

saint3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