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우민호 감독 "패장 안중근의 눈빛, 현빈에게 있었다"(종합) [N인터뷰]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왜 하필 지금, 안중근인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영화화한 '하얼빈'을 보고 나면 그런 질문은 사라진다. 이 영화는 흔들리면서도 오롯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갔던 영웅 안중근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를 통해 영웅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고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안중근 장군의 자서전을 우연히 읽었어요. 몰랐던 점이 있었어요. 일단 그분 나이가 30대, 너무 젊어서 놀랐고요. 이분을 영웅으로만 알았는데 사실 패장(敗將)이었더라고요. (당대에) 지탄도 많이 받으셨고. 그분이 어떻게 거사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호기심도 일었죠."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삼청동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 관련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우민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 지난 24일 개봉했다.
'하얼빈'은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이다. 우민호 감독과는 '내부자들'부터 '마약왕'에 이어 '남산의 부장들'까지 함께 한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역시 제작을 맡았다. 사실 안중근과 독립군들의 이야기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갖고 우민호 감독에게 연출 제안을 했던 것은 하이프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였다. 처음 제안을 받을 당시만 해도 우 감독은 자서전을 읽기 전이었고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 못 한다고 했었어요. 워낙 영웅이신데 저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근현대사를 사회비판적으로 많이 다뤘어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그리려니 용기가 안 났죠. 그러다 이후에 김 대표에게 혹시 감독이 정해졌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안 정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을 읽어볼 수 있겠느냐고 했고, 받아서 읽어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대본이 너무 순수 오락 영화여서요. 김 대표에게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데 이렇게는 못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묵직하게 쓰고 싶다. 동의하면 하겠다고 했고, 동의를 해줘서 시작했어요."
우 감독의 의도대로 '하얼빈'은 묵직한 영화로 완성됐다. 사실적이고 처절한 전쟁 신과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너는 고독한 안중근을 찍은 부감 신, 중국과 러시아의 안전 가옥에서 조용히 일을 도모하는 대한의군의 모습을 담은 신들에서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고뇌와 투지를 최대한 진중하면서도 깊이감 있게 담으려는 감독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과감하게 이 길을 택했어요.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지킨다고 흥행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실패하는 경우도 많죠. 저는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도 좋아해요. 그렇지만 이 영화만큼은 그렇게 찍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진심으로 찍으면 관객들이 다 알아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사회 이후 '하얼빈'은 시의적절한 대사들로 화제를 모았다. 분명, 12·3 계엄령 이전에 모두 편집 과정이 끝난 작품인데 묘하게 시국에 들어맞는 대사들이 많다.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 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다,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라는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가 그렇다. 또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라는 안중근의 마지막 대사는 마치 우리의 시위 문화를 표현한 듯한 문장이라 화제가 됐다.
우민호 감독은 "내가 혹시 작두를 탔나 싶은 기분은 안 들었느냐"는 말에 "아내에게 그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은 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9월에 월드 프리미어 할 때 봤던 버전과 내레이션이 똑같아요. 사실 안중근 장군님이 하셨던 말씀을 메인으로 (대사의)가운데를 채우고 앞뒤를 제가 채웠어요. 앞뒤에 들어간 내용은 사실 원래 대본에는 없었죠. 그런데 2024년도 새해 벽두, 1월 1일에 일어나서 확 영감을 받아 쓴 대사였어요. 갑자기 보강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십 분도 안 걸리고 확 써버렸죠."
'하얼빈'에 나오는 안중근은 대중에게 익숙한 영웅 안중근과는 다른 모습이었으면 했다. 우 감독은 그런 안중근을 맡기기에 딱 맞았던 배우가 현빈이었으며 이 작품을 세 번 거절한 그가 끝까지 거절했다면 영화를 아예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했다.
"실패한 패장이 하얼빈에 가는 여정이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얼마나 고뇌에 차 있었을까요. 두려움도 있지 않았을까요. 슈퍼맨도 아니고 여러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어떤 눈빛이 현빈 씨에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연하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한...그러면서도 강한 힘과 결기가 느껴지고 한 번 마음을 먹으면 굽히지 않는 느낌도 들어요. 그게 배우 현빈의 무게감이에요."
'하얼빈'은 '내부자들'과 '남산의 부장들' 등 이미 '명작'으로 인정받는 웰메이드 영화를 두 편이나 우민호 감독에게도 특별한 영화로 남을 예정이다. 그는 독립군들의 얼굴에 누가 되지 않고 관객들에게는 힘과 위로가 되는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며 바람을 밝혔다.
"우리 배우들, 스태프들과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이 영화는 잘 찍어도 못 찍어도 TV에서 삼일절, 광복절에 계속 나오겠구나. 그러니 우리 정말 잘 찍자. 왜냐하면 내가 찍어도 못 찍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 감독으로서 고통스러운 일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작품은 잘 만든 영화로 남겨지기를 바라요."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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