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보는 영화? '히든페이스', '청불'의 은근한 인기 [정유진의 속닥무비]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색(色)다른 밀실 스릴러'라는 이름을 앞세운 영화 '히든페이스'가 외화 군단의 공격 속에서도 고고하게 살아남아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경쟁작의 제목들을 보면 놀랍다. 인기 높은 전작의 속편들인 '모아나2'와 '글래디에이터Ⅱ', 유명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인 '위키드' 등 라인업이 쟁쟁하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위키드'와 같은 날 개봉한 '히든페이스'는 박스오피스 1위를 한 적은 없지만, 2주 넘게 상위권에 랭크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동명의 콜럼비아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집 안의 비밀 공간에 갇힌 여자 수연(조여정 분)이 약혼자 성진(송승헌 분)와 후배 미주(박지현 분)의 민낯을 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방자전'(2010)과 '인간중독'(2015)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김대우 감독의 연출작이다.
김대우 감독은 장르와 이야기를 불문하고 자기 작품 안에 '관능적인 사랑'을 포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관능적인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애 묘사'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장르와 이야기 안에서 인물의 갈등과 삶을 드러내고 깊이감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요소로서 관능을 잘 활용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이 '관능'은 관객들에게도 확실한 셀링포인트가 되는 모양새다. '히든페이스'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이 쉽지 않은 11월 극장가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기준, 29일까지 56만 5278명의 누적관객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28일 기준, 이 영화의 좌석판매율은 12.2%로 '모아나2'나 '위키드' '글래디에이터Ⅱ' 같은 작품들보다 높았다. 좌석판매율은 특정 기간, 특정 영화가 상영된 스크린 좌석 수의 모든 합 대비 같은 기간 해당 영화 관객수의 비율을 매겨 계산한다. 관객들의 실제 관람 정도를 파악할 수 있어 차후 영화의 흥행 지속 여부를 가늠할 때 유효한 데이터다.
항간에는 이 영화가 3040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낸 여성 관객들이 평일 오전, 오후 시간대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는 것. 실제 CGV가 제공하는 세대별 관람객 수 데이터에 따르면(29일 기준) 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본 세대는 30대로 전체 관람 관객의 29%다. 뒤이어 40대가 26%, 20대가 24%, 50대가 21%로 나타났다. 관객들의 남녀 비율도 큰 차이는 없지만 여성(51%)들이 남성(49%)들보다 조금 더 본 것으로 확인됐다.
배급사 측은 평일 낮 관객이 많이 찾는 영화의 특성에 맞춰 이례적으로 '낮 무대인사'를 진행하고 있다. 송승헌과 조여정 등 주연 배우와 감독은 29일에도 오후 1시부터 메가박스 코엑스와 롯데월드타워 등 극장을 찾아 관객들을 만났다. 배급사 측에 따르면 이 같은 무대 인사 시간 배정은 보통 주말이나 퇴근 이후 시간대에 무대인사를 하는 다른 영화들과 다른 양상이다.
NEW 홍보마케팅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히든페이스'는 청불이 곧 장르'라는 말처럼 앞으로 개봉을 앞둔 영화들과 타깃층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장기 흥행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며 "장르 특성상 낮과 심야에 관객이 몰리고 있는 관람 경향을 고려해 평일 오후 무대인사, 저녁 타임 와인 증정 등 시간대별 마케팅 활동도 이색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뉴스1에 설명했다.
흥행 영화가 흔치 않은 시대다. 예전처럼 한 해에 한두 편씩 천만 영화가 나오기는 하지만, 손익분기점을 넘어 200~300만, 400~500만 관객을 동원하던 소위 '중박' 영화들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히든페이스'는 '관능' 혹은 '청불'이라는 키워드로 이 같은 풍토 속에서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한'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어른 취향 관객들'을 타깃으로 삼은 이 영화가 100만의 고지를 넘기고 '알짜배기 흥행'을 이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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