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리메이크 열풍…원작 vs 한국판 뭐가 다를까 [N초점]

대만판 '청설', 한국판 '청설' 포스터
대만판 '청설', 한국판 '청설' 포스터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 극장에서 연이어 개봉하며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핸섬가이즈'나 '파일럿' 등이 해외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로 '중박'을 이뤄낸 바 있어, 재미가 보장된 작품에 대한 신뢰감은 커지는 중이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리메이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화'일 것이다. 한국 현실에 걸맞은 각색으로 국내 관객들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어야 애써 영화를 다시 만드는 것에 대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오는 6일 개봉 예정인 '청설'은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용준(홍경)과 진심을 알아가는 여름(노윤서), 두 사람을 응원하는 동생 가을(김민주)의 청량하고 설레는 순간들을 담은 영화다. '청설'의 원작은 동명의 대만 영화 '청설'(聽說·2010)로 개봉 당시에도 로맨틱한 내용과 청각장애, 수어 등 독특한 설정으로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다. 중화권 배우 펑위옌과 천이한(진의함), 천옌시 등 청춘스타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특유의 따뜻한 감성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비밀'(2008)과 함께 '대만 로맨스' 대표작으로 인기를 누렸다.

한국판 '청설'은 대만판이 갖고 있는 풋풋한 감성을 붙잡는 동시에 한국적인 설정과 전개를 구현해 보려 노력했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주인공 자매의 설정이다. 원작에서는 언니인 샤오펑(천옌시 분)이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수영 선수이고, 동생인 양양(천이한 분)이 그런 언니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소녀 가장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판에서는 둘의 그런 설정을 바꿔 언니인 여름이 소녀 가장 노릇을 하며 청각장애를 가진 수영 선수 동생 가을을 돌본다. 연출자 조선호 감독은 대만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보다 'K-장녀'라는 한국 특유의 캐릭터를 주인공 여름에 부여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으려 노력했다.

한국판 '청설'과 대만 원작에 또 하나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원작에 있었던 소소한 설정을 빼고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드라마에 집중한 점이다. 예를 들어 양양이 하는 독특한 행위예술 아르바이트라든가, 남자주인공 티엔커가 양양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동화적인 방식 등이 한국판에서는 빠졌다. 조 감독의 입장에서는 2000년대 기준 로맨틱하다고 여겨졌던 방식이 2024년의 한국 관객들에게 다소 지나치게 느껴질 것이라 여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 감독은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감상은 괜찮지만, 만드는 입장에서 (원작과) 똑같이 했을 때 연기하는 배우도 글을 쓰는 나도 좀 어색해질 것 같았다, 캐릭터를 구상하고 할 때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결과, 한국판 '청설'은 대만판보다 담백한 톤으로 인물들의 순수한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완성됐고, 한국적 상황으로 봐도 어색함이 없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보통의 가족' 포스터

'청설' 보다 앞서 개봉한 리메이크 영화는 '보통의 가족'이다. 지난달 16일 개봉한 '보통의 가족'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디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 '디너'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미국에서 각각 2013년, 2015년, 2017년에 영화로 제작된 바 있으며 '보통의 가족'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네 번째 영화다. 한 소설을 원작으로 앞서 나온 세 가지 같은 내용의 영화가 있는 '보통의 가족'은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한국적인 색깔을 가미했다.

'보통의 가족'에서 가장 도드라진 지점은 '한국식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다. '보통의 가족'에서 배우 홍예지가 연기한 혜윤은 외국 명문대에 합격할 정도로 똑 부러지는 수재다. 하지만 자신이 사촌 시호(김정철 분)와 벌인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적인 동요 없이 오로지 해결에만 집중하는 사이코패스적인 반응을 보인다. 캐릭터의 이 같은 설정은 인성 교육보다 명문대 진학에 집착하는 한국적 교육열에 대한 허진호 감독의 비판적인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더불어 재규(장동건 분)와 연경(김희애 분)이 아들 시호의 대학 진학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한 점, 연경이 혜윤을 위해서 가짜 자원봉사증을 써주는 장면 등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는 설정이다.

'히든페이스' 포스터

'에로티시즘 대가'라 불리는 김대우 감독의 영화 '히든페이스'도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히든 페이스'는 실종된 약혼녀 수연의 행방을 쫓던 성진 앞에 수연의 후배 미주가 나타나고, 사라진 줄 알았던 수연이 그들과 가장 가까운 비밀이 공간에 갇힌 채 벗겨진 민낯을 목격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송승헌과 조여정, 박지현이 주연을 맡았다.

2011년 나온 동명의 스페인-콜롬비아 영화는 인도와 튀르키예, 멕시코 등에서 리메이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20일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방자전' '인간중독' 등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의 신작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명을 앞세운 이 영화는 원작과는 또 다른 김대우 감독의 색깔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