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 박찬욱 각본의 힘…통념 깬 캐릭터와 기발 액션 [시네마 프리뷰]

11일 공개 예정 넷플릭스 영화 '전,란', 리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 스틸 컷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산=뉴스1) 정유진 기자 = '전,란'(감독 김상만)은 넷플릭스 영화인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하는 것이 적합하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에 플랫폼의 형태를 결부시키는 것은 다소 해묵은 감이 없지 않다. OTT 회사가 자신들의 플랫폼 안에서 배급하는 영화를 영화로 보든 보지 않든, 유명 감독들이 연출한 OTT 영화들이 국제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수상하고 다른 명작들과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작품 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전,란'은 영화적으로 무척 흥미롭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비롯해 통념을 깨는 대사들, 인상적인 액션 신, 수위 높은 폭력성이 볼만한 영화를 추구하는 관객들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영화는 두 주인공 천영(강동원 분)과 종려(박정민 분)의 관계를 중심으로 부조리한 신분제로 고통받던 백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양인 출신 소년 천영은 억울하게 팔려 잘 나가는 무관 집안의 자제 종려의 노비가 된다. 노비가 된 천영의 주된 업무는 도련님을 대신해 회초리를 맞는 일이다. 종려는 검술 수련 중 매번 상대에게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해 패배하는데, 그럴 때마다 매를 맞아 억울한 사람은 천영이다.

'전,란' 스틸 컷
'전,란' 스틸 컷
'전,란' 스틸 컷
'전,란' 스틸 컷
'전,란' 스틸 컷

비상한 재주를 가진 천영은 눈으로 검술을 익혀 매일 밤마다 종려에게 검술을 가르친다. 천영의 캐릭터는 지금까지 봐 온 일반적인 사극 속 캐릭터를 완전히 벗어나 있다. 처음 만난 날부터 도련님 종려에게 도발적인 반말을 쓰며, 살벌한 카리스마로 종려를 압도한다. 온화한 종려는 천영을 노비가 아닌 동무로 받아들이고, 엄격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 허용되지 않는 행동들을 허용한다. 어른이 된 천영은 면천의 기회를 노린다. 매번 무과 시험에서 마음이 약해 매번 낙방하는 종려를 대신해 과거 시험을 보기로 한 것. 하지만 천영이 시험에 붙고 나서도 종려의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비슷한 시기 왜란이 터져 두 사람의 운명은 예상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치닫는다.

'전,란'은 독특하게도 임진왜란 전, 후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 그 자체를 다루기 보다는 전쟁의 여파 속에서 다양한 계층이 처하게 되는 갈등의 상황을 보여주며 전형적인 길에서 우회했다. 가장 빛나는 부분은 독특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이뤄내는 향연이다. 되바라진 천영과 섬세한 종려 뿐만 아니라 남성 못지 않은 전투력과 리더십을 가진 천민 여성 범동(김신록 분), 유교의 도를 철저히 지키면서도 백성들과 함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 양반 김자령(진선규 분), 천진난만한 자기중심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임금 선조(차승원 분), 지금까지 봐온 왜군 악당들과는 다른 멋을 보여주는 빌런 겐신(정성일 분)까지. 주요 캐릭터의 대사와 행동, 성격은 기존 사극에서 봐 온 인물들이 보여줬던 어떤 평범한 수위를 뛰어넘는개성을 발휘하고 이는 영화에 펄펄 뛰는 생동감을 부여한다.

폭력의 수위는 다소 과감하다. 이는 전쟁 당시의 참혹한 상황에 걸맞은 신들이라 설득력이 있다. '액션 영화'라는 이름에 걸맞은 호쾌한 액션 신도 다수 등장한다. 특히 영화의 말미, 천영과 종려, 겐신이 해무 속에서 펼쳐내는 '삼각 검투'는 기발하다. 과거와 현재를 바삐 오가는 전개 방식이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나, 영화에 스타일리시한 느낌을 부여하는 데 일조한다. 천영과 종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과 관계가 감독이나 각본가의 의도만큼 잘 표현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영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야 할 두 사람의 드라마가 선조나, 범동, 겐신 등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압도할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란'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배경 액션 사극의 외피를 입은 것 같으면서도 비전형적인 개성을 보여줘 재밌다. 일반적인 관객이라면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박찬욱 감독의 색깔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러닝 타임 126분. 오는 11일 넷플릭스 공개.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