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다 [시네마 프리뷰]

25일 영화 '해야 할 일' 리뷰

'해야 할 일' 스틸 컷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 '해야 할 일'(감독 박홍준)의 배경은 울산이나 거제 등을 떠올리게 되는 어느 지방 도시에 있는 중형 조선소다. 인사팀으로 발령이 난 대리 강준희(장성범 분)는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회사에서는 능력을 인정받고 있을 뿐 아니라 회사 대출을 받아 집을 샀고 여자 친구와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인사팀에 합류하자마자 그는 회사가 맞이하게 된 갑작스러운 위기 탓에 구조조정을 준비하는 업무에 투입된다. 이동우 차장(서석규 분), 정규훈 부장(김도영 분)의 지시에 따라 그게 해야할 일은 정리해고자 150명을 선정하는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맞춰 희망퇴직자에게 먼저 퇴직을 제안하는 것이다.

'해야 할 일' 스틸 컷

유능한 강준희는 빠르게 업무에 적응해 가고, 합리적인 기준을 고민하고 제안한다. 하지만 회사는 객관적인 업무 능력이나 평가 등 기준과 상관없이 정리해고 우선 대상자를 정해뒀고, 이를 뒤늦게 전달한다. 강준희는 또다시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들이 정리 해고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이전 팀에서 자신을 아껴주던 장일섭 부장(강주상 분)과 절친한 이상수 과장(김남희 분) 중 한 사람을 해고 대상자로 선정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부닥친다.

'해야 할 일'은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적인 오피스 드라마다. 박홍준 감독은 실제 자신이 조선소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사실감 넘치는 각본과 연출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구조조정'이라는 난제가 던져진 뒤 한 회사에서 벌어질 법한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어딘지 모르게 늘 피로해 보이는 이 차장의 모습, '전졸'(전문대 졸업자)이라는 이유로 주요 업무에서 배제된 채 잡무만 처리하다 결국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손 대리(장리우 분)의 행보, 과거에는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였지만 지금은 정리 해고를 통보하는 사측 입장인 정 부장과, 그가 어떤 소식을 전할 지 기다려야하는 장 부장의 관계 등은 현실의 아이러니를 잘 반영했다.

'해야 할 일' 스틸 컷
'해야 할 일' 스틸 컷

묵묵히 자기 일을 하던 주인공 강 대리는 조금씩 괴로움에 젖어 든다. 친한 선배와 존경하는 상사 중 한 사람을 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는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만, 이내 어떤 선택도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2016년이다. 얼마 전까지 시위에 참석했던 강 대리는 인사팀 담당자로서 회사 소식지에 정리 해고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 발간하는 아이러니 가운데 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며 애써 괴로움을 감춘다.

영화는 담담하고 담백하게 강 대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는 한 회사 내 노동자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다소 씁쓸한 결말을 통해 회사 내 개인으로서 보는 이들에게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담담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다.

어쩌면 지금 주어진 '해야 할 일'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넌지시 힌트를 주는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장성범 뿐 아니라 정규훈 부장을 연기한 김도영과 이동우, 장리우 등 대부분의 배우들이 사실적이고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직장 생활을 하며 단편 '이삿날'을 연출해 2017년 부산독립영화제, 2018년 인디포럼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된 박홍준 감독의 신작이다. 명필름랩이 제작했다. 러닝 타임 100분. 오는 25일 개봉.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