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된 '개저씨'? 조정석의 코믹·여장·차력쇼 '파일럿' [시네마 프리뷰]

31일 개봉 영화 '파일럿' 리뷰

'파일럿' 스틸 컷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코미디 영화의 조종간을 잡은 조정석은 한없이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파일럿'은 적어도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만큼은 그 믿음에 확실히 보답하는 영화다. '원맨쇼'를 보여주는 조정석의 코믹한 비상이 돋보인다.

16일 언론시사회를 공개된 영화 '파일럿'(감독 김한결)은 여자로 변신한 조정석의 코믹한 열연과 현실을 반영한 곳곳의 코미디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2019)로 데뷔한 김한결 감독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남자가 여자로 변장한다'는, 다소 고전적이고 익숙한 설정을 동시대적 감수성이 묻은 연출로 흥미롭게 선보였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올 만큼 인기 있는 한국항공의 '간판 파일럿'인 한정우(조정석 분)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늘 자신감이 넘치던 그는 하지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회식 때 한 '꽃다발' 발언 때문이다.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 임원에 동조, 여성 승무원들을 "꽃다발"이라고 표현하며 술 따르기를 회유한 그의 모습은 누군가에 의해 온라인상에 공개된다.

'파일럿' 스틸 컷

이후 한정우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회사에서 잘리고, 다른 항공사에서는 하락한 이미지 탓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도 하지 못할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평소 무관심한 남편에게 섭섭함이 쌓여있던 아내는 이혼을 선언해 버리고, 한정우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는 어느 날 술김에 동생 한정미(한선화 분)의 이름으로 이력서를 써서 낸다. 허위 경력으로 덜컥 합격을 해버린 그는 ASMR 뷰티 유튜버인 한정미의 도움으로 여자 조종사 한정미가 돼 면접을 보게 되고, 회사 이미지상 '여성 조종사'를 필요로 했던 한에어의 새로운 기조에 따라 신입 조종사로 최종 합격의 기쁨을 맛본다.

'파일럿'의 주요 웃음 포인트는 여자가 된 남자 한정우의 피치 못할 상황과 그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응에서 나온다. '한정미'가 된 한정우에 대해 여성 동료이자 선배로서 연대감을 느끼는 '언니' 윤슬기(이주명 분)와 '현실 남매' 같은 무드로 오빠 한정우를 여자로 변신시켜 주는 한정미, 한정미가 자신이 재수 없게 여기던 공군사관학교 선배 한정우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끝없이 '플러팅'을 하는 서현석(신승호 분)까지. 여러 사람과 '케미'를 만드는 조정석의 코믹한 열연은 웃음을 자아낸다.

'파일럿' 포스터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은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1994)와 '핫칙'(2003) '화이트 칙스'(2004) 등 할리우드 코미디에서 반복돼 왔던 플롯이라 익숙하다. 하지만 '파일럿'에는 '젠더 갈등'이 첨예한 한국 사회의 상황을 끌고 와 현실적인 공감을 일으키고자 한 흔적이 보인다. 여성 면접자에게만 이성 교제나 결혼 계획 등을 물어보고 술자리에서 여성 직원들에 대해 외모 평을 하는,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여자 한정미로 위장한 한정우가 겪어내는 상황들은 공감을 살 만하다. 다만 이 같은 '젠더 이슈' 소재는 영화의 부수적 요소로 다소 피상적으로만 표현된 느낌이 없지 않다. 영화는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어머니와 여동생, 여성 동료의 입장에 한 층 더 가까워진 한정우의 성장을 그리며 간접적인 화해를 이룬다.

조정석의 열연에 이어 영화 속에서 코미디 재료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은 다양한 패러디 신들이다. 이찬원의 팬인 한정우 어머니의 일상을 통해 보여주는 열광적인 팬덤 문화, '유퀴즈'와 유튜브 콘텐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화 등을 패러디한 장면들에서 공감의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러닝 타임 111분. 오는 31일 개봉.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