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재킹' 숭고한 휴머니즘에 대한, 향수 짙은 회고록 [시네마 프리뷰]
21일 개봉 영화 '하이재킹' 리뷰
-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요즘 세상에서는 믿기 어렵지만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는 비행기 납치 사건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미연방항공청 통계에 따르면 '하이재킹'이라고 불리는 비행기 납치 범죄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불과 5년간 전 세계적으로 325건이나 발생했다. 항공보안검색이 지금처럼 첨단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한국에서도 심각한 '하이재킹' 사건이 몇 차례 발생했었는데, 영화 '하이재킹'(감독 김성한)은 그 중 하나인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하이재킹'은 주인공인 공군 조종사 태인(하정우 분)이 상공 훈련 중 북한으로 진입하는 여객기를 격추하라는 명령을 받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태인은 북한 쪽 상공을 향해 나는 여객기의 기장이 절친한 공군 선배임을 확인한 뒤 하이재킹 상황을 의심해 명령에 불복한다. 결국 비행기는 북한으로 넘어가고 이 사건으로 강제 전역을 당한 태인은 얼마 뒤 여객기 부기장으로 일하게 된다.
그날의 사건 후 약 1년 뒤, 태인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곱씹으며 회한을 느낀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납북된 비행기의 승객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이들은 가족들의 무사 송환만을 기다린다. "알량한 휴머니즘"이라는 비행 단장(김종수 분)의 비난이 여전히 가슴 속에 아프게 박힌 가운데, 그는 베테랑 기장 규식(성동일 분)과 함께 속초발 서울행 비행기의 조종석에 앉는다.
태인과 규식이 조종간을 잡은 비행기에는 수상쩍은 인물 용대(여진구 분)가 타고 있다. 속초 출신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던 용대는 6.25 전쟁 때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된 형으로 인해 극심한 차별과 괄시를 받으며 살았고, 급기야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감옥에까지 갔다. 복역한 그는 집에 되돌아가지만, 엉망이 된 방 한구석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썩어가는 어머니의 시체였다. 남한에서의 삶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용대는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에 가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이재킹'은 역사적 사실과 실제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영화에 반영했다. 범인인 용대의 서사라든가, 비행기 안에서의 상황, 태인의 마지막 선택 등은 실제 발생한 사건을 기초로 극화됐다. 다만 실제 사건에서 승객들을 위해 희생한 인물의 직책은 태인 같은 부기장이 아닌 수습 조종사였으며, 당시 비행기의 조종석에는 기장과 부기장, 수습 조종사까지 세 사람이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이목을 끄는 점은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영화의 톤앤매너다. 다른 작품에서라면 농담 한마디를 던지지 않고는 못 배겼을 성동일이나, 하정우가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웃음기를 뺐다고 해서 마지막 극적인 장면의 비극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감정적인 자극을 끌어내는 것도 아니다. '웃다가 우는', 여전히 한국의 드라마 장르 영화의 특징이라 여겨지는 특유의 패턴을 조심스럽게 피해 갔다. 절제된 톤으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역할에 충실한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갈 뿐이다. 그 결과, 영화가 그려내는 휴머니즘의 순수성과 숭고함은 더 짙어졌다. 강요 없이 묵직하게 남는 여운의 힘이 있다.
역사가 스포일러인 영화다. 어떻게 20대 젊은 범죄자 단 한 명의 존재가 비행기 안 수십명의 사람들을 그 정도의 위험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 개연성에 의문을 갖게 될 수도 있으나 실제 사건에 기초한 탓이 크게 의미 없는 질문으로 남는다. 태인이 군 조종사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탑건'('탑건'의 매버릭은 미 해군 소속이지만)을 떠올리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러닝 타임 100분. 21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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