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로 돌아갈지도"…칸 영화제서 존재감 사라진 韓 영화의 위기론 [N초점]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이렇게 한국 영화가 없었던 적이 있었나.
지난 11일 오후(현지 시각 11일 오전) 제77회 칸 국제영화제(이하 칸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경쟁 부문을 포함한 공식 섹션 초청작들을 발표했다. 올해 경쟁 부문 초청작은 총 19편으로 션 베이커와 지아장커, 요르고스 란티모스 등 유명 감독들의 신작이 여기에 포함됐다. 아쉬운 것은 이 명단에 한국 영화가 부재했던 점인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황금종려상의 후보가 되는 영예를 안은 한국 영화는 없었다. 다만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가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을 받아,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한국 영화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최초 초청된 이래, 한국 영화는 경쟁 부문에 적지 않게 이름을 올려왔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초청된 2016년부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9년까지는 매해 경쟁 부문 진출작을 배출해왔다. 코로나19로 영화제가 오프라인에서는 기존처럼 열리지 않았던 2020년과 영화제를 재개한 2021년은 한국 영화가 경쟁 부문에 진출하지 못했다. 2022년에는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경쟁 부문에 발탁돼 각각 감독상(박찬욱)과 남우주연상(송강호)을 받았지만. 지난 2023년에는 또 경쟁 부문에 선정되지 못했다. .
경쟁 부문 진출작이 부재한 상황인 점에서는 2021년이나 2023년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분위기 면에서는 올해가 더 비관적이다. 2021년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극장이 위기 국면을 다 벗어나지 못한 때였다. 이 시기를 잘 견디면 한국 영화도 다시 빛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게다가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이 비경쟁 부문, 단편 영화 '매미'(감독 윤대원)가 시네파운데이션, '당신 얼굴 앞에서'(감독 홍상수)가 칸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돼 존재감을 발했다.
지난해에도 경쟁 부문에는 한국 영화가 초청받지 못했지만 '화란'(감독 김창훈)이 주목할 만한 시선에, '거미집'(감독 김지운)이 비경쟁 부문에,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감독 김태곤)이 미드나잇 스크리닝, 단편 영화 '홀'(감독 황혜인) '이씨네 가족들'(감독 서정미)이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받았다. 무려 다섯 편이나 공식 섹션에 초청받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식 섹션은 아니지만 병행 섹션이라 불리는 비평가 주간에 영화 '잠'(감독 유재선)이, 감독 주간에 영화 '우리의 하루'(감독 홍상수)가 초청받으며 풍성한 라인업이 완성됐다.
가끔 공식 섹션 초청작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고, 아직 발표되지 않은 섹션이 있으며 비평가 주간이나 감독 주간도 아직 초청작을 공개하지 않았기에 섣불리 위기론을 꺼내 들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칸 영화제 공식 섹션에서 올해처럼 한국 영화가 주목 받지 못한 경우는 흔치 않았기에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쏟아지고 있다. 즉, 국내발 영화의 위기가 한국 영화의 국제적인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이후 세대의 감독 중 아직 국제 영화계에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는 차세대 감독이 나오지 않은 점은 위기론에 무게를 더한다. '영화 예술 부흥'의 근간이 되는 독립예술 영화에 대한 관심 부족과 상업적인 장르물 영화에만 인력과 자본이 쏠리는 산업적인 병폐는 이 같은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22년간 칸 영화제에 매년 참석해 한국 영화의 성공 역사를 직접 목도한 전찬일 평론가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공식 섹션 초청작이 더 나오지 않는다면) 한국 영화의 위상이 20세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재앙이다, 비극 정도가 아니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주목할 만한 시선에도 초청작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영화의 국제적인 위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며, 한국에서 그만큼 주목할 영화가 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칸 영화는 한국 영화에 20여년간 꾸준히 애정을 보여온 영화제인데, 한국 영화의 위기 국면이 국제 영화제에서의 위상에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며 이번 결과에 대해 논평했다.
또한 전 평론가는 "그간 한국 영화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와 국내에서의 위기론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주장을 펼쳐왔었는데 이번 칸 영화제 초청 결과를 보면 결국 그 갭이 줄어들면서 위기 국면으로 가고 있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겠다 싶다, 물론 아직 남은 섹션들이 있으니 지켜봐야겠지만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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