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전엔 '남산의 부장들'? 격동의 현대사 담은 명작들은 과연 [N초점]
수작들 총정리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12.12 군사 반란으로 처음으로 다룬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개봉 첫날부터 2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 청신호를 켰다. 지난 5월 '범죄도시3'의 천만 돌파와 여름 영화 '밀수'의 500만 돌파 외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한국 영화계는 오랜 만에 피어오른 고무적인 흥행 조짐을 만끽 중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12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반란을 일으킨 신군부 세력과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나섰던 진압군의 일촉즉발 9시간을 담아냈다.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들이 있으나 실재했던 세부 사건들을 중심으로 극이 이어진다. 더불어 이름을 바꾸기는 했으나 실존 인물에 기반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몰입도를 높인다.
'서울의 봄'의 가장 빼어난 점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서스펜스 넘치는 연출이다. 이 같은 연출을 통해 잊혀져 가던 역사 속의 한 사건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운명을 바꿔버린 결정적인 순간으로 재조명됐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남긴 교훈은 오늘의 관객들에게도 분명한 시사점이 있다.
'서울의 봄'처럼 정치적,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되짚는 작품들은 2000년대 이후에도 많이 나왔다. 특히 70년대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작품마다 연출 의도나 주제는 달라도 연결해서 보면 다양한 관점에서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어 유익하다. '서울의 봄'과 연결해서 보면 재밌을 한국 현대사 배경 영화들을 정리해봤다.
◇ 한국 전쟁(1950.6.25~1953.7.27)_'태극기 휘날리며' '국제시장'
의좋던 형제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갈등을 겪는 내용을 그린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 2004)는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 이념 전쟁의 희생양이 돼버린 한 가족의 비극은 여전히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포레스트 컴프',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2014)은 우리시대의 아버지 덕수(황정민 분)의 일생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삶을 되돌아 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가장 과거 시점에 등장하는 사건은 한국 전쟁 초기 주요 사건 중 하나인 흥남철수(1950.12.15)다. 북에서 남으로 피난을 가던 덕수의 가족들은 덕수가 흥남철수 때 업고 있던 막내 여동생을 놓쳐버리는 바람에 이산가족이 되고 만다. 실향민으로서, 이산가족으로서 아픔을 간직한 덕수가 세월의 모진 풍파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노년 세대의 삶을 재조명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 4.19혁명(1960.4.19)과 유신정권(1972.10.17~1979.10.26)_'효자동 이발사' '킹메이커' '실미도'
'효자동 이발사'(감독 임찬상, 2004)는 청와대가 경무대라고 불리던 시절, 경무대에 들어가 대통령 직속 이발사로 근무한 주인공 성한모(송강호 분)의 삶을 그린 영화. 영화는 4.19 혁명에서 시작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기를 따라가며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갔던 유신정권 치하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린다. 대통령의 '용안'에 면도칼을 대야 하는 성한모가 매일 두려움에 떨고, 설사를 했다는 이유로 어린 아들이 간첩 용의자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등 블랙 코미디의 소재로 활용된 이야기들은 웃을 수만은 없는, 당시의 억눌린 소시민들의 삶을 엿보게 한다. '킹메이커'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캠프 참모였던 엄창록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서 중요했던 선거들을 따라간다. 1961년 재보궐 선거와 1963년 총선, 1971년 대선을 배경으로 주요 사건들이 펼쳐진다. 작품 속에선 실제 현대사처럼 1971년, 제7대 대선 전에 치른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김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 김운범(설경구 분)이 40대 기수 경쟁자들을 뚫고 치열한 접전 끝에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
'실미도'(감독 강우석, 2003)는 1971년8월23일 실미도 북파 부대(684부대)원들이 섬을 탈출해 서울로 진입하다 영등포구 대방동에서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던 중에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던 '실미도 사건'을 다룬 영화다. 684부대는 북한 특수요원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했던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1968.1.21) 이후 북한에 보복하기 위해 만든 북파 목적 부대였다.
◇ 10.26 사건(1979.10.26)_'그때 그 사람들'과 '남산의 부장들'
'그때 그 사람들'(감독 임상수, 2005)과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 2020)은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건을 다뤘다. 이 사건으로 인해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시작돼 10월 유신(1972.10.17)을 거치며 18년간 이어졌던 박정희 전 대통령 정권은 끝났다. '그때 그 사람들'은 10.26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를 블랙 코미디로 그려냈고, '남산의 부장들'은 끝내 대통령을 쏘게 되는 한 인물의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된다.
◇ 5.18 민주화 운동(1980.5.18)_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5.18 민주화 운동은 이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됐을 만큼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는 '박하사탕'(감독 이창동, 2000)과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 2007)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2017)가 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명작으로 꼽히는 '박하사탕'은 평범한 남자 김영호(설경구 분)의 삶을 역순으로 따라가는 독특한 플롯을 취했는데, 그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중요한 지점에 5.18 민주화 운동이 있다. 5.18 당시 군인이었던 영호는 진압군으로 동원돼 광주에 갔고, 그곳에서 실수로 여고생을 죽이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이 그의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관객들은 마지막에 가서 영화 초반, 영호가 왜 철길에 홀로 서서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게 됐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를 재현한 작품들이다. '화려한 휴가'가 광주 시민의 관점으로 영화를 풀어낸다면, '택시운전사'는 민주화 운동을 취재하는 독일인 기자와 서울에서부터 그를 태우고 광주에 가게 된 택시기사의 관점으로 그린다.
◇ 제5공화국(1981~1988) 시기_'변호인' '헌트' '남영동 1985'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제5공화국 시기는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한 작품들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는 '변호인'(감독 양우석, 2013)과 '헌트'(감독 이정재, 2022)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 2012)가 유명하다.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부림사건을 주요 배경으로 한다. 부림사건은 부산 지역 양서협동조합을 통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을 검찰이 영장 없이 체포하고 불법 감금, 구타 및 고문을 가했던 사건이다. 군사독재 정권이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던 시기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배우 이정재가 감독으로 변신, 연출한 첫 장편 영화 '헌트'는 1983년 발생한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얀마를 순방하던 시기, 미얀마의 도시 양곤에 위치한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이 미리 설치한 폭탄이 터져 장관 및 대통령 수행원 수입명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은 폭탄 테러 사건이다.
'남영동 1985'는 '김근태 고문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고(故) 김근태 전 장관(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 1985년 영장 없이 체포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간 극한의 고문을 받았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국내외 인권단체를 통해 알려졌고,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이 미국 등 세계에 알려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 6.10 민주 항쟁(1987.6.10)_'1987'
영화 '1987'(감독 장준환, 2017)은 6.10 민주 항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사망 사건 등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대통령 직선제와 헌법 및 정권 개혁을 끌어낸 6.10 민주화 운동의 배경을 설명한다. 영화 속 각자의 위치에서 정의를 위해 작은 선택을 했던 각계각층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여러 사회 구성원의 열망과 힘이 모여 이뤄진 것이라는 주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 90년대_'국가부도의 날' '공작' '더 킹'
화려한 만큼 그림자도 짙었던 90년대를 다룬 영화들도 다수 있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감독 최국희, 1998)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긍융을 요청해야 했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한국은행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풀어냈다.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 2018)은 암호명 '흑금성'으로 활동했던 대북 공작원 박채서씨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 북안기부로부터 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의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은 정보사 소령 출신 박석영(황정민 분)은 대북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북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 분)에게 접근하고, 그를 통해 북한 권력층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이 영화에는 제15대 대선(1997년)과 관련, 논란이 됐던 '총풍 사건'도 등장한다.
제15대 대선과 제16대 대선은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 2017)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영화 속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비리 검사들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해 기회를 노린다. 특히 제16대 대선 전에 노무현 후보가 검찰조직 개혁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자 굿까지 벌이며 노무현 후보의 낙선을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이 웃음을 주기도 한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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