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역린', 무엇을 살리고 죽여야 했을까
30일 개봉
- 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유기림 기자 = 영화 '역린'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News1
</figure>'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 영화 '역린' 포스터의 문안이다. 극장가에서 "살아야 하는 자"인 '역린'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과 역사적 사건이라는 매력적인 재료로 어떻게 "죽여야" 하고 "살려야" 하는 부분들을 가려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역린'에서 '살아 있는' 부분은 전체 분위기를 끌고 가는 영상미다. '다모'(2003), '베토벤 바이러스'(2008) 등 내용은 물론 볼거리 면에서도 작품성 높은 드라마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은 첫 영화 데뷔작 '역린'에서 로케이션부터 의상까지 세심하게 신경쓰며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애썼다.
조명을 이용한 음울한 분위기, 흑백과 원색을 오가는 전통의상. 정조의 서고 존현각과 같이 재현된 배경, 조정석과 현빈 그리고 정재영의 액션은 그 자체로 흥미를 자아낸다. 특히 영화 말미 존현각에서 펼치는 현빈의 절제되면서도 확실한 액션과 살수를 비롯한 자객들의 액션은 이 감독이 드라마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다 쏟아낸 듯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영상미의 매무새에 비해 이야기는 못내 아쉽다. 제목 '역린'이 용(왕을 상징)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의미하고 정조를 맡은 현빈의 복귀작이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졌음에도 영화의 시선은 정조뿐만이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여러 인물들을 훑기 바쁘다.
'역린'은 1777년 7월28일 밤 정조의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에서 일어난 왕 암살 사건인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실화에 허구를 가미한 작품이다. 정조(현빈 분), 정순왕후(한지민 분), 혜경궁 홍씨(김성령 분), 홍국영(박성웅 분) 등은 실존인물이나 상책(정재영 분), 살수(조정석 분), 광백(조재현 분), 월혜(정은채 분)는 상상 속에서 만들어졌다.
24시간 동안 펼쳐진 8명 각각의 이야기를 2시간여 만에 풀어내야 했던 것. 지난 2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이재규 감독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다양한 캐릭터가 부딪친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의 전사(前史)가 갖는 이야기적 밀도를 유지하고 속도감도 놓치지 않아야 했다"고 고민한 이유다.<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영화 '역린' 촬영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News1
</figure>또한 이 영화는 군 제대 후 3년 만에 나선 현빈의 첫 사극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다. 현빈은 노론과 소론의 치열한 당쟁 속에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고 계속해서 암살 위협을 당하는 정조로 나온다.
사극톤과 근심 어리면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표정, 학문은 물론 무예에도 힘쓴 정조를 묘사하려 한달여간 애써 만든 세밀한 등근육과 백발백중 액션은 현빈에게 눈길을 던질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러나 정조의 목숨을 위협하는 영조의 젊은 계비인 정순왕후, 절절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혜경궁 홍씨, 국왕 호위와 수도 방어를 전담하는 금위영의 대장 홍국영, 고아들을 모아 살수로 기르는 비밀 살막의 주인 광백 등 명확하게 선악이 분리되는 인물들을 차치하더라도 눈 둘 곳 많은 이야기에 시선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영화 '역린'의 배우 현빈(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News1
</figure>담아야 할 이야기가 많았던 만큼 주인공 현빈이 기대보다 부각되지 않는다. '역린'은 정조뿐만 아니라 나머지 인물들의 사연을 충실히 전달하려 애썼기에 정조가 보여주려 하는 군주상에 대한 초점은 분산된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베어 간다면"이라는 정조, 정조를 충실하게 보필하며 "누군가를 살리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내관 상책, 성장과정에서 사연을 품게 된 살수, "여기 있음 이래도 저래도 죽어"라며 비밀을 안고 있는 세답방 나인 월혜까지. 각 인물들의 사연에 따라 감정선이 바뀌기에 어느 한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 쉽지 않다.
'역린'에서 내관 상책은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시작해 "오직 세상에서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끝나는 '중용' 23번째장을 읊는다. 인물 한명 한명을 놓치지 않고 영화 요소요소에서 정성이 묻어나는 '역린'이 관객을 감동시켜 박스오피스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
30일 개봉. 상영시간 135분. 15세 이상 관람가.
giri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