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시대 물결 타는 조심스러운 조타수 [정덕현의 페르소나K]
"흐름은 어쩔 수 없어요, 조심스럽게 최선의 선택을 할 뿐"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예능 연출자는 누굴까. 바로 나영석 PD다. 그는 2015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 PD로서는 최초로 TV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예능 출연자로서 예능상을 받았다. 한 번은 PD로서 또 한 번은 플레이어로서 상을 받은 거의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그는 일찍이 KBS에서 '1박2일'을 최정상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세워 놓았고, CJ로 이적해서도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윤식당', '신서유기', '서진이네' 같은 메가 히트 예능 프로그램들을 연달아 성공시키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었다. 에그이즈커밍으로 소속을 옮긴 후에는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이제 제작진이 아닌 출연자로서 맹활약하며 66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인플루언서로 떠올랐다. 심지어 최근에는 팬 미팅을 하고 각종 캐릭터 굿즈가 나오자마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도대체 급변하는 트렌드와 시대 변화 속에서 그가 끝까지 살아남아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된 비결은 뭘까.
◇ 반 발짝 앞서가는 선택과 실행
(서울=뉴스1)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KBS '1박2일' 시절부터 나영석 PD를 봐왔다. 그래서 일종의 성장사가 꿰어지는데 그 과정 하나하나가 놀라운 면이 있다. 스튜디오 예능에서 야외로 옮겨가는 그 시점에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 '1박2일'을 정상에 올려놨고 그것으로 캠핑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CJ ENM으로 이적해서 내놓은 '꽃보다 할배'는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중장년층의 해외 배낭여행 트렌드를 이끌었고, '삼시세끼'는 도시인들이 낯선 시골에 가서 무얼 하기보다는 안 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예능 트렌드를 또 한 번 뒤집었다. '윤식당'이 여행에 창업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더해 이런 부류의 프로그램들을 쏟아져 나오게 했다면, 채널 십오야 같은 유튜브 채널은 전문 방송인들의 유튜브 트렌드를 선도했다. 한 발짝도 아닌 반 발짝 앞서 트렌드를 선도해 온 것이다.
"어떤 변화를 선택한다는 게 사실 무섭죠. 이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근데 큰맘 먹고 어떤 결정을 하고 1, 2년 지나면 그 결정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쨌든 계산이 되잖아요. '이러이러했던 건 안 좋았지만 그래도 이 결정 덕분에 이런 변화가 생겼고 이 변화 덕분에 처음엔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위치에 와 있네' 하는 거죠. 예를 들어 '1박2일'을 마무리하고 KBS에서 나와 CJ에서 '꽃보다 할배'를 하면서 KBS에 계속 있었으면 이 프로그램 내가 기획할 일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결정을 한두 번 하다 보면 조금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나쁜 짓도 한 번 하는 게어렵지 버릇 대면 익숙해지잖아요."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과 그래서 그 변화에 맞춰 실제로 행동을 옮기는 일은 다른 문제다. 나 PD 역시 처음 '꽃할배'를 할 때만 해도 그리 좋은 성적을 낼 기획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어떤 것이든 메이킹에 자신이 있었고 진심을 갖고 만들면 비록 편성이 새벽 2시가 되도 찾아본다는 소신이 있었다. 그래도 당시 '꽃할배'가 낯선 시도였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어르신들이 배낭여행을 간다는 콘셉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나 PD가 즐겨 쓰는 전략이 들어 있었다.
"요즘도 자주 쓰는 전략인데 서로 안 맞는 것들을 붙였을 때 그 부딪침에서 나오는 재미와 긴장감이 있어요. 저희도 처음에는 해외 배낭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아이돌 생각하고 그랬죠. 뭔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할아버지들이 배낭여행을 한다고 생각이 됐을 때 이거다 싶었어요. 안 어울리잖아요. 분명히 긴장감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죠. 서로 안 어울리는 두 개를 같이 붙였을 때 거기서 분명히 스파크가 튈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도 그게 맞아떨어졌죠. 배낭여행이 사실 힘들어요. 어르신들도 고생하시고 그 과정에서 느끼시는 성취감 같은 것도 있죠. 물론 서로 맞지 않는 두 소재를 충돌시켜 재미를 얻는다는 게 괜찮아 보이지만 쉬운 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이서진 씨는 이 기획에 현실감을 만들어준 연결고리였죠."
◇ 새로운 데 불편하지 않은 비결
나 PD의 프로그램이 주는 느낌은 새로운데 불편하지 않고, 일상적인 것 같은데 새롭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나 PD가 가진 특유의 균형감각이 들어있다. '꽃할배'에서도 이서진 투입은 자칫 불편할 수도 있는 상황을 풀어주는 묘안이었다. 자칫 어르신들 고생시키는 그림으로만 비칠 수 있었던걸, 짐꾼인 이서진이 들어가 대신 해줌으로써 그 불편한 느낌을 상쇄시켜 줬다. 게다가 너무 이서진을 괴롭혀도 불편할 수 있는 지점에는 나 PD가 투입됐다. 힘든 하루 일정이 끝나고 나면 두 사람이 모여 투덜대는 광경이 들어갔다. 긴장감이 있지만 그걸 적당히 풀어내 주는 균형감각, 이것이 새로운데 불편하지 않은 나 PD 프로그램이 가진 비결이었다.
"프로그램은 사실 물에 소금 타는 것 같은 거예요. 적절한 농도가 돼야 재미있어요. 너무 싱거워도 너무 짜도 재미없는데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현장에 가도 현장이라는 건 매번 변하는 유기체잖아요. 어느 날은 너무 짜고 어느 날은 싱거워져요. 그러면 그간을 맞춰줄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제작진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꽃할배' 같은 경우 긴장도가 너무 세졌다 또는 너무 힘든 여정이다 그러면 제작진이 나서죠. '운전 저희가 할게요' '또 이건 우리가 할게요', 근데 어느 날은 '너무 심심해 재미없어' 그러면 이제 저희가 못 본 체하죠. 그렇게 마지막 간을 맞추는 과정이 있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이서진 씨를 괴롭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이서진 씨의 말 상대가 돼주기도 하는 거죠."
나 PD의 그 말에 순간 음식 간을 맞추는 엄마들이 떠올랐다. 맛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경험적으로 가진 엄마들처럼, 나 PD는 순간순간 그 프로그램의 농도와 텐션을 조절하는 것이 제작진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건 나 PD 스스로도 자신을 관리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그는 거창한 수상소감 대신 그 주에 하는 프로그램을 봐달라고 홍보 멘트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 역시 그 상황에서 들뜨기보다는 보다 현실로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그 균형감각과 텐션 조절이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후배들과의 협업에서나 또 프로그램의 완성도와 비즈니스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던 것이었다.
◇ 비즈니스와 완성도 사이의 균형
"'1박2일' 시절부터 시즌제를 계속 꿈꿨던 건, 예능도 드라마처럼 하나의 작품이고 그래서 기승전결이 있고 메시지 같은 것들도 있어서였어요. 소설도 끝이 나야 여운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근데 위클리로 나오는 그런 예능들이 사실은 방송국에는 효자예요. 한 번 세팅된 자원을 갖고 계속 가는 거니까 기획 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잡혀 있는 시스템 속에서 계속하니까 오차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잘 되는 프로그램은 광고도 계속 잘되니까 비즈니스 입장에서는 무조건 플러스죠. 하지만 작품으로 보면 약간 의문점이 있는 거죠. 일단 출연자와 제작진이 서로를 갉아먹는 부분이 있어요. 계속하다 보면 제작진은 소재가 떨어지고 출연자는 매너리즘에 빠지는데 시청자들은 여전히 이걸 봐준단 말이에요. 습관적으로. 그러면 결국은 힘이 떨어지는 순간이 와요."
물론 지금 나 PD는 CJ ENM에서 나와 에그이즈커밍이라는 제작사로 들어왔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차라리 고정적인 프로그램이 하나 정도는 있는 게 비즈니스적으로 안정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 PD 역시 그것이 회사 경영에는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선을 그었다. 힘들더라도 완성도가 있는 시즌제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위클리 프로를 계속하는 건 보시는 분들은 재밌을 수 있는데 만드는 사람이 지쳐요. 그래서 저희는 TV에서 방영되는 위클리는 아직은 안 하려고 해요. 좀 힘들더라도 시즌제 제작으로 원하는 메시지나 재미를 충분히 보여드리고 아쉬움 속에서 마무리될 수 있게 하자는 게 우리 생각이고요. 오히려 위클리로 하는 그런 부분은 유튜브를 통해서 시도하고 있어요. 힘을 조금 빼고 유튜브를 통해 조금 자유롭게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거죠."
에그이즈커밍은 '삼시세끼'부터 '윤식당', '서진이네', '신서유기' 등 상당히 많은 브랜드를 이어가고 있다. 일종의 콘텐츠 프랜차이즈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메가 브랜드와 실험적인 시도 사이에도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고 한다.
"직감적으로 브랜드를 활용할 때와 쉬어야 할 때는 정하는 것 같아요. 너무 인기 있다고 너무 많이 써먹었다면 조금 쉬어줘야 될 것 같다고 판단하고, 오랜만에 돌아오면 반가워할 거라 판단하죠. 후자가 '삼시세끼 라이트'(삼시세끼 light) 같은 거였죠. 반면 '서진이네' 같은 건 벌써 두 번 연속으로 했으니까 내년에는 좀 쉬어줘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하고하고 있죠. 그리고 그런 프랜차이즈들만 계속 나오면 시청자분들이 지루해할 수 있으니까 안정적인 IP 두 개 정도를 하면 좀 실험적인 IP 하나 정도는 하려고 해요. 되든 안 되든 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하죠."
◇ 660만 구독자의 인플루언서에게 유튜브란
나 PD는 66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PD에서 플레이어로도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채널 십오야를 열고 유튜브를 하게 된 건 뭔지 몰라서 해보자는 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3년간은 작고 소소하게 연예인들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해봤는데 그저 TV 프로그램을 작은 규모로 반복하는 느낌이더란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새로운 플랫폼이니 거기 맞게 뭔가 정립을 하고 가야겠다고.
"저희가 내린 결론은 유튜브는 수많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하나라는 거였어요. 연예인을 보고 싶으면 TV를 보면 되죠. TV에는 '캐릭터로서의 그 사람'이 나와요. 근데 그 사람의 팬이라면 '진짜 그 사람'을 보고 싶을 거예요. 굳이 유튜브를 찾는 건 그 사람의 진짜를 보고 싶어서예요. 채널 십오야는 우리 제작 집단이 만든 유튜브인데 어쩌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우리들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에는 우리와 함께 일하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소소한 예능 프로그램이 채널 십오야였다면, 지금은 에그이즈커밍이라는 방송국 채널의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 채널 십오야가 된 거죠. 저뿐만 아니라 김대주 작가, 최재영 작가 이런 제작진들이 얽히는 이야기가 나오고 구독자들이 그들의 팬이 되어주길 바랐어요."
이 과감한 선택은 올해 나 PD가 백상예술대상의 예능상을 받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됐다. 백상에서는 나 PD를 선정한 이유로 채널 십오야가 이 회사를 보여주는 리얼한 시트콤 같은 콘텐츠들을 내놨고 나 PD가 그 중심에서 본격적인 플레이어로서 활약한 점을 들었다. 그 수상으로 인해 그는 섣불리 내놨던 공약을 지키기 위해 팬 미팅도 했다. 그의 이런 변화가 놀라웠다. 그는 사실 '1박2일' 시절만 해도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그래서 누구 앞에 나서는 것도 잘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막상 판이 벌어지면 잘 소화해 내게 됐다. 무슨 비결이 있었던 걸까.
◇ 마치 인제에서 래프팅을 타는 것처럼
"못할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으니까 받아들여 주시는 거지 저 잘 못해요. 그리고 이런 팬 미팅 같은 위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어요. 인제 같은 데 가면 래프팅을 하는 그런 이미지죠. 지금 배를 타고 어딘가로 떠내려가고 있는 거예요. 제 인생 자체가 또는 제가 만드는 콘텐츠 자체가 떠내려가고 있는데 저 앞에 바위가 있어요. 부딪히면 안 되니까 노로 툭 쳐서 방향을 살짝 바꿨어요. 바꾸고 나서 봤더니 또 다른 게 있어요. 어떤 식으로든 바위에 부딪힐 게 뻔하거든요. 그럼 그거는 슬퍼할 일이 아닌 거죠. 왜냐하면 그 순간 올바른 판단을 통해서 선택한 거니까요. 사실 그 흐름은 내가 지금까지 내린 수많은 결정의 결과로 흘러가고 있는 거죠. 그러니 일단 그것까지 해보자. 또 방향이 어딘가로 바뀔 거고 그 바뀌면 또 그리로 가면 된다. 이렇게 생각해요."
이건 중요한 이야기였다. 변화의 흐름에 그저 자신을 맡긴다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조심스럽게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그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결국 물살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최적의 판단을 통해 장애물을 피해가거나 좋은 쪽으로 방향을 살짝살짝 트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고 갑자기 방향을 90도 튼다거나 물 밖으로 나간다거나 하는 건 어차피 안된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런 인식은 그가 PD로서는 예외적으로 방송에 조금씩 등장하게 되다가 현재처럼 플레이어로 뛰게 되는 그 과정 속에도 그대로 녹아 있었다.
"'1박2일' 시절에도 처음에는 얼굴은 안 나오고 목소리만 나왔어요. 프로그램 특성상 제작진이 어떤 식으로도 방송에 등장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신효정 PD 시절에 저를 찍는 카메라가 하나 생긴 거예요. 전 어쩔 수 없이 했지만 그게 재밌었나 봐요. 지금이야 제작진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일상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금기였죠. 그러면서 차츰 익숙해졌어요. 부담이 되는 면도 있지만 이제는 제작진이 쓰는 작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박현용 PD도 '지구오락실' 친구들과 함께 게임 하고 하는 장면들이 더 재미를 만들어주잖아요."
그는 최근 '지락이의 뛰뛰빵빵' 같은 숏폼 스핀오프에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촬영 기간이 짧고 유튜브 위주의 촬영을 하는 거라 큰 준비를 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보는 식으로 찍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건 마치 하나의 물줄기를 타고 가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물길을 따라가며 생겨나는 결과처럼 보인다.
"'이번 시즌 잘 돼야 돼' 하면 다들 힘이 들어가 있어요. 제작진도 출연자도 마찬가지죠. 그게 좋은 결과로 오기도 하지만 또 스트레스로 오기도 하죠. 근데 이런 작은 콘텐츠는 서로 하면서도 '이거 잘 안돼도 돼, 편하게 하자' 이런 게 조금 색다른 재미를 주더라고요. 최근 '삼시세끼'를 보신 분들은 아마 보셨을 텐데, '콩콩팥팥' 출연자들이었던 이광수, 도경수 씨가 '삼시세끼' 판에 잠깐 들러서 감자를 수매해 가는 신이 아주 짧게 찍혔죠. '삼시세끼'에서 감자를 잔뜩 캤는데 그걸 다 먹지도 못하는 상황에 일단 그걸 광수, 경수 씨에게 사가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한 거죠. 그땐 광수, 경수 씨도 우리도 뭘 하게 될지는 구체적으로 몰랐어요. 지난주 이게 일종의 트리거가 돼서 '콩콩팥팥'의 스핀오프를 찍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큰 프로젝트는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 없지만 작은 프로젝트는 이런 작은 트리거를 통해 세계관 협업의 스핀오프가 가능하죠."
◇ 나영석 PD, 시대의 물결을 타는 조심스러운 조타수
여행을 지금껏 메인 소재로 해온 나 PD는 여행이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라고 했다. 길도 잘 못 찾고 계획도 잘 못 짜는 편이란다. 하지만 직업적으로는 여행이 너무나 감사한 소재라고 했다. 그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 부딪쳤을 때 스파크가 이는 전략을 자주 쓴다고 했는데 여행은 바로 그런 스파크를 낼 수 있는 범용한 소재라고 했다. 또 여행과 더불어 게임을 늘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나 PD는 게임이 너무 재미있지만 큰 스트레스라고 했다.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 게임이지만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을 찾아내고 만들기 위해서 합숙을 가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역 속에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게임을 찾아냈을 때 희열이 크다고 했다. 끝없이 고민하고 회의하며 끝끝내 찾아내는 이른바 '되는 기획'의 조건 같은 게 궁금했다.
"그건 제작자마다 다를 것 같아요. 연출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희의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딱 하나를 말씀드리면 '한 줄로 설명이 끝나는 기획'이 바로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설명 들으면 다 그럴듯해요. 근데 그거를 한 줄로 과연 표현할 수 있는 계획인가 생각해 봤을 때 그게 안 되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죠. 저는 시청자들이 보기 편한 기획이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복잡다단한 서바이벌 프로 같은 경우는 또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다른 영역이고, 저희처럼 약간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제작사에서는 한 줄로 설명이 끝나느냐 마느냐가 되게 중요한 거고 그랬을 때 시청자도 아주 쉽게 몰입하는 거예요. '꽃보다 할배'는 '할아버지들이 갑자기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펼쳐지는 이야기', '삼시세끼'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 낯선 시골에 떨어져서 세 끼 해 먹는 이야기' 이런 식이죠."
기획자이자 연출자 그리고 플레이어로서의 나 PD는 어찌 보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고 버텨내야 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인물이다. 24년간 그는 그 도저하게 흘러가는 흐름 위에서 살아남았고 늘 시대를 주도하는 인물로 살아왔다. 그는 래프팅에 비유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스스로를 '조심스러운 조타수'라고 표현했다. 어디로 튈지 어디서 바위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불안해 하며 어떤 선택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그가 던지는 시대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알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이고 우리 인생은 다 흘러가잖아요. 사람들이 트렌드라고 부르든, 흐름이라 부르든, 시대라 부르든 어떤 새로운 상황들이 계속 우리 앞에 있고요. 그거는 제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맞아요. 제가 어떤 걸 미리 10m 앞에 설치해 놓고 거기를 지날 수는 없어요. 그건 그냥 운명처럼 오는 거예요. 저는 그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배를 제가 운전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배 안에는 함께 타고 있는 이들도 있죠. 그러면 어쨌든 그때그때 수많은 판단을 통해서 부딪히기도 하고 속도를 높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속도를 줄이기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겁니다."
*유튜브 채널 '뉴스1연예TV'에서 관련 영상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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