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인터뷰]① 유아인 "'싸가지 없게' 꼬리표…두려웠지만 적극성 발휘했죠"(종합)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 '#살아있다'(감독 조일형)의 절반 이상은 유아인의 '원맨쇼'로 이뤄진다. 눈을 뜨면 곧바로 온라인 게임 세계로 입장하는 유튜버 겸 게이머 준우. 그는 갑자기 닥친 재난 상황 속 고립감에 희망을 잃고 무턱대고 뛰쳐나가 좀비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진열장에서 꺼내 마신 양주로 시름을 잊기도 한다.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해맑다가도 비관에 빠져 충동적인 선택을 하는 준우의 캐릭터는 배우 유아인의 몸을 입은 덕에 풍부한 감정 속에 생동하는 흥미로운 인물로 완성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아인은 "진지하게 땅굴만 파는 건 재미없게 느껴진다"며 진지한 캐릭터와 작품에 매달렸던 20대 때와 달라진, 30대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말했다. 성공 후 다가왔던 과도기를 재밌는 실험들을 하며 지나온 그에게 '#살아있다'는 분명 뜻깊은 작품이다. 젊은 입봉 감독과 함께 한 본격적인 장르물인데다 영화 홍보를 위해 '방구석 1열'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이제는 목표를 그리지 않고 매순간 그려지는 그림을 수용하면서 편하게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저는 즉흥적, 자유로운 성향이지만 목표로 하는 바와 욕심, 욕망이 상당히 뚜렷한 편이었거든요. 지금은 그냥 가는 것 같아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스스로 관찰하고 느끼고 수렴하면서 진행되어 가는 것 같아요."
유아인은 또래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이고 빠르게 '아이콘'의 위치를 획득했다. 이 같은 성공의 원동력은 자신의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뚝심에서 나왔다. 본질을 지키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길을 추구해왔기에 당당히 '선례'가 될 수 있는 삶. 배우 유아인의 1막은 이처럼 올바르고도 흥미롭게 흘러가고 있다.
현재 유아인은 영화 '#살아있다'의 개봉을 위해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살아있다'는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 모든 것이 끊긴 채 홀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는 벌써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관객 기근에 시달렸던 극장에 희망을 던져줄만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영화를 위해 오랜만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결정하는 등 이례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유아인과 영화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평이 좋아서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렇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말씀들을 많이 주시고 약점도 장점도 있는데 장점을 더 강하게 느껴주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초반 40분 정도 혼자서 등장한다. 자신의 '원맨쇼'를 직접 본 소감은.
▶'#살아있다'는 내가 현장 편집을 가장 많이 봤던 영화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현장 편집본을 볼 정도로 초반 호흡 조절을 위해 많이 노력했던 영화고 보면서도 계속 불안한 느낌이 있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다 보니 충분히 루즈해지거나 충분히 흥미롭지 않다거나 할 수 있다. 또 관객 입장에서 배우의 얼굴을 오래 보는 게 혼란스러운 일이다. 40분 정도의 시간동안 충분한 흡인력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원맨쇼' 치고는 집중도가 있었다고 말씀해주셔서 그 부분이 제일 가장 크게 안도감이 들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염색하고 캐릭터를 만든 것은 직접 낸 아이디어인가.
▶처음에는 가발을 시도했다.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삭발 시도를 했고 (삭발을 유지하면)두 영화 사이에 차이가 크지 않아서 가발을 시도하려고 했다. 유아인은 짧은 머리인 것이 공식처럼 돼 있어서 긴 머리 가발을 쓰고 한 회차 촬영을 마쳤다. 촬영 끝에 답답해서 가발을 벗었다. 어차피 가발을 써야하니 평소 안 하던 탈색을 해볼까 하고 탈색을 하고 있던 상태였는데, 제작사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님이 보시고 '저거 괜찮은데 같이 생각해볼까' 하셨다. 현장에서 되게 많은 사람들이 투표도 하고 모니터도 해보고 테스트 촬영도 해봤다. 고민 끝에 탈색 머리가 인물의 개성을 잘 살려줄 수 있겠다 싶더라. 운명처럼 만들어졌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긴머리의 '샤방샤방'한 준우를 보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스무살 이후에 한 번도 보여드린 적 없었던 앞으로 내려오는 긴머리였다.
-비주얼에서 여러 시도들을 했는데 어려운 점은.
▶머리의 길이감을 맞추는 게 진짜 어려웠다. 20일 간을 혼자 촬영하는데 촬영을 순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짧은 머리는 길이감이 조금만 달라도 차이가 나더라. 그런 것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전에 제작보고회 때도 말씀드렸는데 '한국 남자 배우가 보여주지 않은 파격적 이미지다' 하고 했는데, 안재홍 '코스프레'가 됐다. 그래서 비교적 덜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웃음)
공교롭게도 (영화 준비 때)안재홍씨 이미지 같은 걸 많이 상상했다. 옆집 청년 같은 평범한, 안재홍씨를 보면 편안한 느낌이 있다. 어렵고 불편한 느낌이 아니다. 안재홍을 진짜 좋아하는데 그런 느낌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했는데 '사냥의 시간'에서 비슷한 비주얼로 나와서 좋았다.
-영화 촬영을 위해 몸집을 불린건나.
▶전에 비해서 빼기는 했다. 사실 몸에는 크게 신경을 안 썼다. 평범한 청년의 몸이라는 게 보편성을 삼을만한 게 딱히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느낌이면 좋겠다 싶었다. 너무 깡 마르지 않았으면 좋겠고, 부어 있고 집에서 짠 걸 많이 먹고 하는 청년의 비주얼이면 재밌겠다 생각했다.
-조금 더 망가졌어야 했던 건 아닌가.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망가졌다.(웃음)
-캐릭터 설정할 때 의견을 많이 냈나.
▶비교적 많이 낸 편이다. 내가 작년에 촬영한 두 편의 영화가 공교롭게도 신인 감독님의 영화였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신인 감독님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현장 경험도 늘고 새로운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경험들을 하면서 전과는 다른 적극성 같은 게 조금씩 생겼다. 사실 그런 고려가 전부터 조금씩 있었다. 십대 때는 더더욱 그랬고, 이십대 때는 더더욱 그랬는데 내 캐릭터 외에는 영화에서 전혀 의견을 크게 내지 않는 편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내 캐릭터 하나에서만큼은 '건방지다, 싸가지 없다'는 얘기를 들을지언정 내 일이라서 끝까지 가본다 생각하면서 의견을 끝까지 피력했다. 영화 만드는 과정에서는 일부 월권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현장에서 할 수 있어야겠다는 부담도 있었다. 책임감이랄지. 그게 생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신인 감독님과 작업을 하게 됐다.
-'#살아있다'에서부터는 현장에서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말인가.
▶'#살아있다'는 시작부터 혼자 많이 나오기도 해서 내 책임이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어느 때보다 의견을 많이 내고, 심지어 어떤 신은 미리 혼자 리허설을 하는 영상을 찍어 감독님께 보내드리는 적극성도 갖게 됐다. 준우가 혼자 술을 먹고 이상한 몸짓을 하는 장면 이야기다.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영상을 찍어 보내드렸고, 촬영용 음악 선택도 함께했다. 다른 배우들에게도 모두가 예민하고 섬세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 의견을 내기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했다. 껄끄러움이 남지 않게 '선배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제가 이렇게 해볼테니 이렇게 맞춰볼까요?' 하는, 두려운 시도를 적극적으로 했다. 그런데 그게 배우간의 호흡, 사적인 관계도 돈독하게 만들어주더라. 영화를 중심에 넣고 적극적으로 할수록 좋은 관계가 많들어진다. 너무 조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야겠다 생각하게 됐다.
-전체를 볼 수 있는 눈과 여유가 생겼다고 봐도 무방할까.
▶여유가 생겼을 수 있다. 전에는 봐도 여유가 없었다. 의견이 있어도 내가 생각하는 부정적 인식, 의심이 있어도 얘기하는 게 꺼려졌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결국 그게 다 거슬리더라. 그런 부분에서 나이나 경력이 주는 허용치가 조금은 있다. 그게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게 있다. 제 딴에는 유아인 하면 의견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자기 주장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일하는 현장에서는 다 선배님이고 어르신들인데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겠나. 현장에서 그냥 풀릴 수도 있는 거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면 자기 의견을 내겠지만 '어린 놈이 싸가지 없게' 같은 꼬리표가 달리면 공동 창작자로서 의견을 피력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그건 세상이 주는 폭력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세상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두려움, 일종의 소극적인 상태에서 살았고 그게 갑갑했었다. 그런데 이제 시작하는 감독님들을 만나면서 도리어 더 함께 만드는 기쁨을 더 크게 가질 수 있었다. 보다 유연한 소통을 허락해준 현장이었다.
-좀비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주변 스태프들의 눈치를 보며) 좀비들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온 세상이 다 좀비라고 하는데 배우만 아니래. 미치겠다.(웃음)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모두들 좀비로 생각하시는 그것들과 하는 연기는 너무 편했다.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모니터 보는 게 진짜 재밋었다. 저런 소리가 튀어나오는 구나, 저런 표정이 나오는구나. 독특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블루 스크린을 보고 연기하거나 혼자 벽을 보고 연기하거나 영화 속에서 카메라를 보고 연기한다거나 그런 것을 잡아가는 게 조금 더 힘들었다.
-장르물 영화는 처음이라고 하더라. 또래 배우들에 비해 장르물 출연이 왜 이렇게 늦어지게 된 것일까.
▶진지한 걸 좋아했다. 진지하고 괜히 '딥'하고 이런 걸 좋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린 배우였을 때 어린 배우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닌 의외의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10대, 20대 배우에게서 보기 어려운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제서야 편해졌다.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어떤 그림을 제가 그려가는 거니까, 그런 지점이 있는 게 유아인의 그림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림을 떠나서 그런 경쟁력을 가진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뻔히 기대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이 잘하는 것을 할만큼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본질에 집중해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느낌들 때문에, 스스로 그런 그림을 펼쳐보이는 젊은 배우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 그림의 매듭이 지어지지는 않았지만 30대에 등이 떠밀리고 아역, 청소년, 청년 이런 수식을 들어왔으니까. 그런 수식을 거치며 과거와 작별했다. 이제는 이전에 없던 편안한 모습들을 힘있게 보여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배우로서 요즘 그리고 있는 그림은 무엇인가.
▶요즘에는 '나 혼자 산다'도 나가고, 요즘 그리는 그림이 희한하지 않나? 다 그런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조심스러워 하던 것조차도 그렇게 조심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조금 더 다양한 활동들을 해보고 싶고, 보여드리기 전에 제 스스로 체험하고 싶고 경험하고 싶다. 너무 진지하게 땅굴만 파는 건 재미없게 느껴지고. 이런 저런 도전, 체험을 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그게 결과적으로도-아직 큰 결과는 없지만-흥미롭게 유아인의 새로운 면을 인식해주실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이런 변화를 갖게 된 계기가 있나.
▶대구 촌놈이 서울 상경해서 가졌던 단순하고 세속적인 욕망은 거의 이뤘다. 단순하고 세속적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목표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놀랍게도 다 성취했다고 느꼈다. 사실 재미가 없어졌달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인간으로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과도기도 있었고, 나를 어떻게 써먹지? 어디로 보낼 수 있을까? 나를 어딘가로 보내는 동력이 있을까?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고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목표가 부자로 사는 것일 수도 있고, 동경하던 감독과의 작업일 수도 있고, 몇백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감사하게도 상당 부분 일어난 일들이 돼버렸다. 30대 배우로 구체적인 그림을 안 그리다가, 숙제처럼 내 앞에 떨어져서 고민했다. 목표를 그리지 않고 매순간 그려지는 그림을 수용하면서 편하게 가보자고 생각했다. 나는 즉흥적, 자유로운 성향이지만 목표로 하는 바와 욕심, 욕망이 상당히 뚜렷한 편이었다. 지금은 그냥 가는 것 같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스스로 관찰하고 느끼고 수렴하면서 진행되어 가는 것 같다.
<【N인터뷰】②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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