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에 가구당 빚 '8400만원'…대출 갚느라 소비에 쓸 돈 없다

[먹구름 낀 경제]② "지갑 열고 싶어도…" 연봉 40% 빚 갚는데 써
"내수 반등 속도, 내년 성장 핵심…대안은 기업 투자·정부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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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가계 빚이 나날이 불어나고 고금리·고물가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소비 여력이 좀체 살아나질 않고 있다. 최근 가구당 빚이 8400만 원 수준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가 요지부동인 모습을 보이면서 위축된 내수 경기의 돌파구가 틀어 막힌 상황이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통계 편제를 시작한 2002년 이후 사상 최대인 1913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분기보다 18조 원 늘어난 규모로, 증가 폭이 2021년 3분기 이후 3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총가구는 2273만 가구로 집계됐다. 가계신용 잔액을 가구 수로 나누면 가구당 평균 8420만 원의 빚을 진 셈이다. 지난해 직장인 평균 월급이 364만 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 작지 않은 금액이다.

게다가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에도 정부와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로 인해 은행권 대출금리는 오히려 올랐다. 심지어 일부 은행 신용대출 금리의 경우 지난달 11일 한은 기준금리 인하 이후 한 달 새 많게는 1%포인트(p) 오르기도 했다.

문제는 그간 고금리, 고물가 국면이 2년 넘게 장기화했던 탓에 가계의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질 대로 커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은이 자체 데이터베이스(DB) 기초로 계산한 결과 6월 말 기준 전체 가계 대출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38.3%로 추산됐다. DSR은 한 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다시 말해 우리 가계는 소득의 40% 수준을 금융기관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연봉의 70% 이상을 빚 갚기에 쓰는 대출자(DSR 70% 이상)도 275만 명에 달했다. 게다가 DSR이 100% 이상이어서 연봉 전부 또는 그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쓰는 대출자조차 157만 명(7.9%)으로 추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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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경제는 수출이 예상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추가 성장 동력이 절실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0월 일평균 수출은 26억 1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0.3% 감소하면서 13개월 만에 역성장했다.

이런 가운데 내수라도 기준금리 인하에 힘입어 그간의 부진에서 벗어나야 경기 침체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기조가 동조화된 만큼 내년 글로벌 경제는 금리 인하의 내수 파급 효과와 경기 반등 속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연구원은 "내수 회복 속도가 한국 경제의 내년 2%대 성장률 달성 여부를 좌우할 것"이라며 "한국 수출은 반도체 외 수출 호조 품목들이 제한적이고 글로벌 제조업 경기도 부진해 모멘텀 약화를 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내수가 가계의 무거운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둔화 양상을 이어간다면 남은 대안은 기업 투자, 정부 소비뿐이다. 전 연구원은 "미국은 소비 둔화에도 투자 활성화와 재정 확대가 성장을 뒷받침해 내년 2%대 성장률을 이어갈 전망"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 속도도 당분간 빠를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워 내수 활성화에 악재로 지목된다. 전 연구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올해 말까지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한은은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우려로 금리 인하 속도가 더딜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해에도 가계가 피부로 느끼는 경기 온도는 별반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경제 주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수치로 표시되는 지표 경기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며 "4분기 대출행태 조사를 보면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수요와 달리 일반대출 수요는 큰 폭의 상승세가 이어져 향후 가계 소비가 늘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