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트럼프' 땐 금리 못 내린다?…'이제 막 피벗' 한은 난감

트럼프 재선땐 미 장기금리 4.3%p 상승 압력…해리스의 2배
"美 인하 속도 더뎌질 것"…금리 인하 원하는 韓 내수 부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 AFP=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오는 5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한국은행의 향후 통화정책 예상 경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는 경우 한국의 금리 또한 쉽게 내려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3일 한은 뉴욕사무소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정 지출 공약은 앞으로 10년 동안 미 장기 국채금리를 4.3%포인트(p) 높이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공약이 미칠 것으로 분석된 수준(0.2%p)보다 2배 이상 큰 장기금리 상승 압력이다.

사무소는 워싱턴D.C. 소재 비영리 연구기관인 '책임 있는 연방 예산 위원회(Committee for a Responsible Federal Budget, CRFB)'의 추정치와 여러 연구 결과를 이용해 단순 계산을 거쳐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CRFB는 두 후보의 재정 지출 공약이 모두 이행되면 2025~2035년 미 재정 적자가 얼마나 불어날지 추정했다. 그 결과 해리스 부통령은 재정 적자를 3조5000억 달러,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의 2배 이상인 7조5000억 달러 증가시킬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의 경우 해리스 부통령은 133%, 트럼프 전 대통령은 142%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미국의 재정 지출 법안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미 정부 부채 비율은 지난해 97%에서 2035년 125%까지 상승할 것으로 관측된다. 두 후보 모두 미 정부 부채 비율을 높이는데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45%p 수직 상승시킬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역사적으로 미 정부 부채 비율이 1%p 상승할 때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0.02~0.03%p 오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은 뉴욕사무소 제공)

다시 말해 어떤 후보가 당선돼도 한은 기준금리는 빠르게 내려가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 그런데 특히 트럼프 재선이 금리 인하를 더욱 주저하게 할 확률이 높다.

미국 금리가 높아진다는 것은 달러의 가치, 소위 '돈값'이 높아진다는 뜻과 같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 원화의 가치를 낮추면 외화 자금이 국내를 떠나서 달러로 몰려들어 외화 부족 상황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

게다가 한은 뉴욕사무소에 따르면 시장은 대선 결과 확정 이후 2주 내 각 후보의 재정 공약이 미칠 장기금리 상승 압력이 모두 반영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한 번에 치솟은 달러 가치가 환율 급등 등 외환 변동성을 키울 경우 그간 금융 불안을 이유로 기준금리 인하를 미뤄왔던 한은의 입장에서 추가 금리 인하는 어불성설이 된다.

실제로 사무소는 "대선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판세 변화에 따라 금리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 "시장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급격한 되돌림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선거 결과 확정이 지연돼 불확실한 상황이 예상보다 오래갈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미국 양당이 대통령과 의회 과반을 나눠갖는 '스플릿(split)' 시나리오로 가거나 해리스가 당선되면 국채금리의 상승 압력이 빠르게 축소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현재 한은은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운용하고 있다. 무려 13회 동결 끝에 지난달 0.25%p 인하라는 통화정책 방향 전환(피벗)을 결정했다.

미국 정책금리는 지난 9월 연 5.25~5.50%에서 4.75~5.0%로 0.5%p 낮아졌다. 이로써 한국과 미국 사이의 정책금리 역전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이었던 2%p에서 1.75%p로 좁혀졌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으로 금리 상방 압력이 빠르게 반영되면 이 같은 역전 폭 축소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오는 28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미국의 선거 결과를 모두 확인한 이후 열릴 예정이다. 최근 미 대선 결과를 사전에 반영한 환율 상승세를 봤을 때 어느 후보가 당선돼도 10·11월 연속 인하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 땐 금리 상방 압력이 이어지면서 내년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느려지고, 특히 외환 시장 변동성이 사그라들지 않으면 긴축~중립 수준의 비(非) 완화적 통화정책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리스 부통령 당선 때에도 당장 내년 1월 빠른 인하 가능성은 낮게 평가된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내년 무역 분쟁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공급 측 물가 상승 압력을 주기적으로 자극해 중물가 시대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이 경우 물가 리스크가 상존하는 국가들은 중립금리까지 금리를 낮추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전 연구원은 "미국은 기준금리를 4%대까지 쉽게 내릴 수 있겠지만 이후 4%에서 3% 경로는 인하 사이클 초반보다 상당히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며 "이런 가운데 한국은 당분간 수출 둔화가 불가피해 내수 회복 속도가 2% 달성 여부를 좌우할 테고 한은의 금리 인하 속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