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조 빚' 한전, 산업용만 올려 빚 갚을까…"추가 인상 불가피"

산업용(을) 전기료 16.9원, (갑) 8.5원↑…"재무부담에 인상 불가피"
"전력대란 막기 위한 임시방편…원가회수율 낮은 요금에 집중해야"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신당동의 주택가에 설치된 전력량계가 돌아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서민경제 부담 등을 고려해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고, 산업용 고객에 한정해 내일부터 전력량 요금을 평균 한 자릿수 인상률인 9.7%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내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을 kWh당 평균 16.1원 인상해 산업용(갑)의 평균 판매단가는 168.9원, 산업용(을)은 164.6원으로 오를 예정으로, 한전은 이번 조치로 월 3900억 원, 연간 4조 7000억 원가량의 추가 수익을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2024.10.2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나혜윤 기자 = 25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이 킬로와트시(㎾h)당 16.1원 인상된다. 가정용·소상공인 요금은 현행 수준을 유지한다. 서민 가계 부담은 최소화하면서도 한전의 재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정부의 고육지책으로 읽힌다.

산업용 요금 인상은 지난해 4분기 이후 두 번째다. 정부는 당시에도 서민 가계 부담을 이유로 대기업과 같은 다소비 기업의 요금만 6.9% 인상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갑) 요금도 5.2% 올렸다.

산업용 전기요금 ㎾h당 평균 16.1원↑…연간 4.7조원 추가 수익 예상

한전은 주택용·일반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고, 산업용 고객에 한정해 24일부터 전력량 요금을 평균 9.7% 인상하는 내용의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23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대용량 고객인 산업용(을)은 10.2%(16.9원) 인상된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규모 기업의 어려움을 감안해 중소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갑)은 5.2%(8.5원) 인상된다. 산업용(갑)은 계약전력 300kW 미만을, 산업용(을)은 계약전력 300kW 이상으로 구분된다.

이번 요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 산업용 이용자는 약 44만 호다. 이는 전체 전기 소비자의 1.7% 수준이지만, 전체 전력사용량으로 따지면 53.2%를 차지하는 다소비 이용층이다. 이 중 300kW 이상을 소비하는 대기업(산업용을) 집단이 약 4만 1000호로, 지난해 총전력사용량(546TWh)의 48.1%(263TWh)를 썼다.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이번 요금 인상으로 한전이 거둬들일 추가 수익은 매월 3900억 원, 연간 4조 7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지난해 전체 산업용 전력판매량은 290TWh정도인데, 여기에 이번 평균 요금 인상분을 산술적으로 곱한 값이다.

전남 나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한국전력 본사 사옥. /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한전 재무부담 완화 단비 될까…근본 해결책은 전기요금 현실화·사업 다변화

서민 가계 부담을 이유로 가정용·소상공인 전기요금은 동결한 채 산업용 요금만 1년여 만에 다시 올렸지만, 한전의 천문학적인 재무위기를 해소하기는 벅차 보인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이후 6차례에 걸친 요금 인상과 고강도 자구노력에도 한전의 2021~2024년 상반기 누적적자(연결기준)는 약 41조 원에 달한다. 올 상반기 누적부채(연결기준)만도 203조 원에 육박한다.

이에 따른 한전채 발행 등으로 한전이 지불하는 하루 이자비용만도 약 122억 원(2023년, 연결기준)이다.

이번 요금 인상이 한전의 부채 증가 속도를 다소 더디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전기 생산원가를 반영한 '전기요금 현실화' 없이는 백약이 무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더해 한전이 단순히 전기요금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 다변화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이번 요금 인상안은 한전의 적자나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한전이 한전법에 따라 발행할 수 있는 회사채 발행 한도는 5배다. 내년 초가 되면 이를 초과하게 돼 있는데, 이번 요금 인상안의 목적은 한전이 전기를 사 올 돈이 모자라 전력대란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요금을 인상한다면 좀 더 공급원가가 많이 들면서 원가 회수율이 100%보다 낮은 주택용, 일반용, 농사용에 더 집중했어야 한다"면서 "이미 충분한 공급원가를 부담하고 있는 산업용에 대해서만 유독 가격을 올린 것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형평성에도 위배한다"고 덧붙였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전기요금 인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는 24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이 ㎾h당 16.1원 오른다. 동절기 서민경제 부담을 고려해 주택용과 소상공인 요금은 동결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24.10.23/뉴스1

정부, '원가주의' 방향성은 유지…에너지 과소비 인식개선 우선순위로

정부 역시 '전기요금 현실화'란 방향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에너지 다소비에 대한 전 국민적 인식 개선 이후 요금 현실화를 단계적으로 가져가는 방식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에너지 요금의 '원가주의'를 강조해왔다면, 먼저 요금 현실화는 단계적으로 추진하되, 에너지 소비를 줄여 비용 부담에 대한 국민 부담을 자연스럽게 완화하는 방향이다.

실제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25일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에너지 가격이 원가를 반영하고, 상당한 수준으로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고 보는 게 불편한 진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은 한 총리는 "전기료라는 건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에너지 소비가 줄어야 하고,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앞으로의 이산화탄소 배출의 40% 정도는 에너지 소비 절약을 통해서 하라고 강하게 권고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불편한 진실에 직면한다면 우리나라 에너지 가격은 외국에 비해 굉장히 싸고, 소비가 많이 된다는 이야기이고, 기후변화 대응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현실화해야 하는데 모든 언론과 정치권이 반대하는 굉장한 정치 쟁점이 돼 이제는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렇게 계속 끌고 가는 것은 어렵지 않나 싶다"며 "그래서 이 부분은 국민적 컨센서스에 붙여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