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동결되나 싶더니…정부, 인상카드 다시 만지작

한덕수 "에너지 가격, 원가 반영으로 소비 억제…IEA 권고"
해외보다 2~3배 싼 전기요금…한전, 13년간 12.6조 순손실

한국전력공사가 4분기(10~12월) 전기요금 동결을 발표한 9월 23일 경기 수원시의 다세대주택에서 한 시민이 전기 계량기를 살펴보고 있다.ⓒ News1 김영운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정부가 4분기(10~12월) 전기요금 인상을 일단 동결했지만,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요금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그간 물가 부담을 이유로 요금 인상에 신중했던 정부의 기류가 다소 바뀐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2일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한 총리는 지난달 25일 출입기자단 백브리핑에서 "에너지 가격이 원가를 반영하고, 상당한 수준으로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고 보는 게 불편한 진실"이라며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밝혔다.

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은 한 총리는 "전기료라는 건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에너지 소비가 줄어야 하고,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앞으로의 이산화탄소 배출의 40% 정도는 에너지 소비절약을 통해서 하라고 강하게 권고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불편한 진실에 직면한다면 우리나라 에너지 가격은 외국에 비해 굉장히 싸고, 소비가 많이 된다는 이야기이고, 기후변화 대응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현실화해야 하는데 모든 언론과 정치권이 반대하는 굉장한 정치 쟁점이 돼 이제는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렇게 계속 끌고 가는 것은 어렵지 않나 싶다"며 "그래서 이 부분은 국민적 컨센서스에 붙여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총리의 발언이 있기 3일 전 경제컨트롤타워인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한 발언과는 다소 온도차가 느껴진다.

지난 22일 최 부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전기요금)50%를 인상했다"며 "국민 부담이 얼마나 늘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고, 한국전력의 재무 구조, 에너지 가격에 대한 종합적 고려가 필요하다"며 요금 인상에 신중한 입장을 취한 바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News1 임세영 기자

'최악 폭염' 8월 세계 전기요금 비교해보니…韓 6.4만원<日 13.6만원<獨 18.4만원

한 총리의 언급대로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해외 주요국에 비해 2~3배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8월 주택용 전기의 가구당 평균 사용량(363kWh)을 기준으로 실제 납부한 전기요금(세금 및 부과금 포함)을 해외 주요국과 비교한 결과, 한국의 전기요금은 일본(13만 5625원)과 프랑스(14만 8057원)보다 2배 이상 저렴했다. 미국(15만 9166원)보다는 약 2.5배, 독일(18만 3717원)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낮았다.

8월 주택용 가구당 평균 전기 사용량은 363kWh, 전기요금은 6만 4000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사용량은 30kW(9%), 요금은 평균 7500원(13%)이 올랐다.

이중 전년 동월 대비 전기요금이 증가한 가구는 76%, 요금이 감소한 가구는 23%였다.

전년 동월 대비 전기요금이 증가한 가구만 따져보면, 평균 증가액은 약 1만 7000원 수준이다. 요금 인상 범위를 보면 약 39%가 '1만 원 미만', 약 28%는 '1만~3만 원' 미만으로 요금이 증가했다. '10만 원 이상' 전기요금이 증가한 가구는 1% 수준이다. 월 전기요금 30만 원을 넘게 부담하는 다소비 사용자(1000kWh 초과 사용 슈퍼유저)는 전체 0.7%다. 약 19만호가 이에 해당한다.

한국전력 나주 본사 사옥. (한국전력 제공)ⓒ News1 DB

한전, 생산원가 못 미치는 전기요금에 13년간 순손실만 12.6조원

한전이 전기요금에 생산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지난 13년간 입은 순손실만 12조 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남경식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경제연구학회 6월호에 실은 '전력 가격 왜곡의 후생 효과' 논문에서 한전이 전기 생산원가를 반영하지 못한 소위 역마진 요금으로 입은 손실이 지난 13년간 12조 원을 웃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 교수는 논문에서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소비자는 왜곡된 가격으로 약 11조 9000억 원의 추가적인 혜택을 확보했다"며 "생산자는 규제에 따른 원가 이하의 전력 판매로 12조 6000억 원의 순손실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비자 후생 증가분이 생산자 손실보다 6248억 원 적다는 점에서 정부의 왜곡된 가격 정책이 적절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며 "데이터 가용성의 한계로 분석 기간을 2005년부터 2017년으로 했는데 2021년 이후 원가와 판매 단가 사이의 괴리가 매우 커졌다"고 덧붙였다. 최근 자료를 더한다면 손실 규모는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남 교수의 분석처럼 전기요금 역마진 구조가 심화하면서 지난 2020년 132조 원 수준이던 한전의 총부채 규모는 2023년 202조 원으로 늘었다. 이 기간 부채비율도 188%에서 543%로 급증했다.

앞서 지난달 23일 한전은 올 4분기 적용할 연료비조정요금을 현재와 같은 ㎾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했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된다.

이중 연료비조정요금은 직전 3개월 동안의 단기에너지 가격 흐름을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매 분기에 앞서 결정된다. 연료비조정단가는 전기 생산에 필요한 유연탄, 액화천연가스(LNG), 브렌트유 등의 연료비 변동 상황을 반영해 ㎾h당 ±5원 범위에서 결정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국제 에너지가격이 치솟고, 한전의 재무 상태가 악화한 2022년 이후부터 연료비조정단가는 줄곧 최대치인 '+5원'을 유지 중이다. 그사이 국제 에너지가격이 안정세를 보일 때도 연료비조정단가 +5원은 동일하게 유지돼 왔다. 여타 요금 구성 항목의 인상이 어렵다보니 연료비조정단가에서 최대 폭(+5원) 인상을 해왔던 셈이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실질적인 요금 인상 효과는 연료비조정단가를 제외한 전력량 요금 등의 인상에 영향을 받는데, 이들 구성항목에 대한 요금 인상은 지난해 2분기 이후 6개 분기 연속 동결 상태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