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는 의사가 받았는데…제약업체 "세금도 우리가 낼게요"

국세청, 의료계 리베이트 세무조사 착수
연루 의사만 수백 명 규모…"끝까지 추적"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이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세청에서 리베이트 탈세자 세무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국세청은 리베이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과 탈세 행위가 심각한 건설 업체 17개, 의약품 업체 16개, 보험중개 업체 14개, 총 47개 업체의 주요 분야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2024.9.25/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제약업체에 있어서 의료인들은 완전한 '갑'이기 때문에 '어떠한 제약업체가 리베이트 증거를 다 실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업체는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할 수 없습니다".(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

(세종=뉴스1) 이철 기자 = 그간 관행적으로 이뤄진 의료계의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의사와 제약업체의 갑을 관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업체가 리베이트를 건네다 적발되더라도 의료계에 밉보일까 두려워, 의사가 내야 할 세금까지 자신들이 스스로 내겠다는 실정이다.

2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세청은 전날(25일) 관행처럼 이뤄지는 의약품 분야의 불법 리베이트 탈세 사례를 공개했다.

한 제약업체는 의원 원장 부부의 예식비, 신혼여행비, 예물비 등 결혼비용 수천만 원을 대신 내고, 병원 소속 의사의 서울 최고급 호텔 숙박 비용 수백만 원도 대납했다.

또 다른 업체는 의사의 자택으로 명품소파 등 수천만 원 상당의 고급가구·대형가전을 배송했다. 또 의원 소재지로 약 1000만 원 상당의 냉장고, PC 등 고급가전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 병원장에게 약 10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하거나 병원장의 배우자, 자녀 등을 의약품 업체의 주주로 등재한 후 수십억 원의 배당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마트 등에서 카드깡으로 현금을 마련한 후 의료인에게 리베이트로 제공하는 일도 있었다.

직원 가족 명의로 위장 영업대행사(CSO)를 만들고, 이 CSO에 허위 용역비를 지급해 자금을 조성한 제약업체도 발견됐다.

CSO 대표는 고액 급여를 받은 후 현금을 인출해 의료인 유흥주점 접대 등에 사용했다. 전 직원 명의의 CSO에 병원 소속 의사들을 주주로 등재한 후 배당금 지급하는 사례도 있었다.

의료계 리베이트 제공 사례(국세청 제공). 2024.9.25/뉴스1

의료계 불법 리베이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세청은 그동안 리베이트 제공 업체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데 그쳤다.

리베이트의 불법 여부를 떠나, 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으면 소득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소득세를 부과해야 하는데, 그간 제약업체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를 특정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제약업체를 통해서 리베이트가 누구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됐는지 확인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당사자들의 진술만으로는 확인하기가 어려웠다"며 "한정된 인력으로 세무조사를 하다 보니, 끝까지 추적해 의료인까지 과세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약품 업체 영업담당자들은 '리베이트를 수취한 의료인을 밝히느니, 그들의 세금까지 본인들이 부담하겠다'며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의료계의 카르텔이 얼마나 강고한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일단 국세청은 리베이트 의혹을 받는 의약품 업체 16곳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진행한다.

특히 이번에는 업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들까지 추적해 과세할 방침이다.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의료인의 규모는 지금까지 수백 명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앞으로 조사 대상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민 국장은 "금융추적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리베이트 이익의 최종 귀속자를 찾아 정당한 세금을 과세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거짓 세금계산서 수수 등 세법질서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엄정히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r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