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원정진료 후 가상자산으로 탈세한 의사들…국세청 세무조사

국세청, 역외탈세 혐의자 41명 세무조사
추적 피하려 해외 시민권 취득·국적 변경도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이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적세탁, 가상자산 은닉, 해외 원정진료 소득 탈루등 국세청 추적을 피하기 위한 역외탈세 세무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2024.7.2/뉴스1

# 국내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A 씨는 동남아 소재 현지 병원에서 원정진료를 하며 받은 수십억 원을 가상자산으로 외국인 B 씨의 계좌를 이용해 받았다. B 씨는 국내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매각한 후 ATM을 통해 수백 회에 거쳐 현금 인출 후 다른 ATM을 통해 본인 명의 계좌로 다시 수백 회에 걸쳐 현금 입금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세탁했다.

# A 씨는 또 본인의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외국인 환자 유치용역을 제공받고, 적정 수수료를 초과해 수십억 원을 과다 지급하는 방식으로 소득세를 탈루하기도 했다.

(세종=뉴스1) 이철 기자 = 국세청이 동남아시아 현지에서 원정진료를 하고, 수익을 은닉한 의사들에 대해 세무조사에 나섰다.

또 미신고 해외 수익에 대한 국세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황금비자'를 취득, 외국인으로 국적을 세탁한 탈세자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진행한다.

국세청은 이같은 의혹을 받는 역외탈세 혐의자 41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진행한다고 2일 밝혔다.

세무조사 대상자 유형은 △국적 변경·법인 명의 위장 신분세탁 탈세자(11명) △가상자산 수익 은닉 코인개발업체(9명) △해외 원정진료·현지법인 이용 탈세(13명) △국내 자산 국외 무상이전 다국적기업(8명) 등이다.

국세청은 우선 해외 원정진료·현지법인 이용 탈세 혐의자 13명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섰다.

일부 의사들은 동남아시아 등 현지에서 원정진료 수익을 은닉한 혐의가 확인됐다.

이들은 해외 원정진료를 현지병원 세미나 등으로 가장해 관련 매출의 일부 또는 전체를 누락했다. 일부 혐의자는 해외 원정진료 대가를 법정통화 대신 추적이 어려운 가상자산으로 수취한 후 차명계좌를 통해 국내에 반입했다.

또 해외 현지 브로커에게 환자 유치 수수료를 허위·과다 지급하고 차액을 개인 계좌를 통해 돌려받은 혐의도 적발됐다.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코로나19 종식 이후 성형외과·피부과 등 일부 의사들은 동남아 등 해외에 원정진료를 하고도 현지 병원 세미나 참석 등으로 가장했다"며 "일부 의사들은 해외 원정진료 대가를 가상자산으로 수취한 후 차명계좌를 통해 국내에 반입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역외탈세 사례(국세청 제공). 2024.7.2/뉴스1

일부 자동차 소재·부품 업체의 사주 일가가 이익 분여 등의 목적으로 해외현지법인에 법인자금을 유출한 혐의도 확인됐다.

이들은 자본 잠식 상태인 현지법인에 투자 명목으로 거액을 대여한 후 출자 전환으로 채권을 포기하거나 허위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법인자금을 유출했다. 일부 업체는 해외거래처로부터 받은 수출대금 전체를 사주가 해외에서 가로채 자녀 해외체류비 등 사적인 목적으로 유용했다.

국세청은 국적을 바꾸거나 법인 명의를 위장한 신분세탁 탈세자 11명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한다.

이들은 미신고 해외 수익에 대한 국세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름·주민등록 등 흔적을 지우고 외국인으로 국적을 세탁했다.

특히 일부 혐의자는 이른바 '황금비자'로 조세회피처의 국적을 취득한 후 국내 재입국해 숨겨둔 재산으로 호화생활을 영위했다. 일부 국가는 일정 금액 이상을 현지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운용하는데, 이를 이용했다.

정 국장은 "투자 조건으로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중남미 국가들이 다수 있다"며 "조세회피처의 국적을 취득한 후 숨겨둔 재산으로 호화생활을 했다"고 설명했다.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중계무역을 하면서 비용만 신고하고 자기 매출은 모두 숨겨 국내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업체도 있었다.

국세청은 국내에서 키운 알짜자산을 국외로 무상 이전한 다국적기업 등 8명에 대해서도 조사에 들어갔다. 이들은 국내 인적 자원과 인프라, 시장 수요 등을 바탕으로 성장한 국내 자회사의 자산을 국외특수관계자 등에게 매각·이전하면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

무상 또는 저가로 이전된 핵심자산은 기술, 특허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 배포권, 영업권 등의 권리부터 고객 정보, 노하우까지 포함되었고 심지어 국내 사업부 전체를 국외로 옮기기도 했다.

이외에 국세청은 용역대가로 가상자산을 받으며 수익을 은닉한 코인개발업체 등 9명에 대해서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조사에는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가상자산을 발행(ICO)하고 수익을 은닉한 업체, 해외에 기술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가상자산으로 받으면서 매출을 누락한 업체 등이 포함됐다.

정 국장은 "그동안 역외탈세자에 대해 적극 대응했음에도 세법 전문가의 조력과 가상자산 등의 등장으로 역외탈세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고도화되고 있다"며 "경제위기 극복에 사용돼야 할 재원을 국외로 유출하고, 성실납세로 국가 재정을 지탱해 온 영세납세자와 소상공인들에게 박탈감을 줬다"고 비판했다.

ir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