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보다 소득 더 줄어…가계 여윳돈 50조 넘게 '뒷걸음'
이젠 빚내기도 한계…작년 가계 빌린 돈 '역대 최저'
경기부진에 소득정체…가계 여윳돈 209조→158.2조
- 김혜지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지난해 가계 여윳돈이 50조원 넘게 줄어들면서 고금리와 소득 정체에 따른 서민 생계난을 방증했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2023년 자금순환' 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순자금운용(자금운용-자금조달) 규모는 41조 4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조 5000억원 늘었다.
순자금운용은 금융자산 거래액(자금운용)에서 금융부채 거래액(자금조달)을 뺀 값으로, 빌린 돈을 빼고 순수하게 예금·주식·펀드·연금 등의 자산으로 굴린 여윳돈을 뜻한다.
국내 여윳돈은 지난 2022년(39.9조 원)만 해도 2021년(89.9조 원) 대비 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한 바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됐던 2020년(88.1조 원)에는 소비 감소 등의 이유로 2019년(61.7조 원)보다 국내 여윳돈이 증가했다.
지난해 국내 여윳돈이 2년 만에 다시 늘어난 것은 가계 여윳돈 축소에도 비금융법인·정부의 순자금조달 규모가 더 많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은 158조 2000억 원으로 전년(209조 원)에 비해 50조 8000억 원 축소됐다. 이 같은 가계 여윳돈은 2019년(92.5조 원) 이후 4년 만에 최소다.
정진우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가계 소득 증가세 둔화에 따른 여유 자금 감소로 가계 순자금운용이 감소했다"며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이자 비용 등이 많이 늘어났을 것이고 경기 부진도 지속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득 증가세 둔화에도 가계의 소비 활동 자체는 별로 꺾이지 않았고 소비 증가율도 여전히 과거와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가계 여윳돈은 그만큼 줄어든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가계 자금조달 규모는 지난해 36조 4000억 원으로 전년(74.5조 원)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지난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가장 작은 규모다.
정 팀장은 "주택자금 관련 대출의 증가세에도 대출금리 상승 등으로 가계 신용대출과 소규모 개인사업자 대출 등 기타대출이 축소되면서 조달 규모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가계 자금운용 규모는 194조 7000억 원으로 전년(283.5조 원)보다 88조 8000억 원 뒷걸음쳤다.
전반적으로 가계가 빌린 돈보다 굴린 돈이 더 줄면서 여윳돈이 축소된 상황으로 풀이된다. 정 팀장은 "가계 여유 자금 감소로 예치금, 채권 등 모든 상품의 운용 규모가 축소됐다"고 밝혔다.
비금융법인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109조 6000억 원으로 전년(198.1조 원)에 비해 88조 5000억 원 뒷걸음쳤다.
고금리에 따른 조달 비용 증가, 해외 직접 투자 축소, 매출 부진 여파로 자금운용(30.8조원)이 역대 최소 수준까지 급감하며 자금조달(140.4조 원) 감소세를 웃돈 결과였다.
일반정부의 경우 정부 지출이 수입보다 더 많이 감소해 국채를 중심으로 순자금조달 규모가 축소(-34.0조→-13.0조 원)됐다.
국외 부문은 경상수지 흑자 확대로 순자금조달 규모가 41조 4000억 원으로 전년(-39.9조 원) 대비 확대됐다. 국외 부문의 자금운용 증가는 우리나라의 대외부채 증가를, 자금조달 증가는 우리나라의 대외자산의 증가를 의미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4%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전년(104.5%)보다 4.1%포인트(p) 완화된 수준이다. 기업부채 비율은 122.3%로 전년 대비 1.2%p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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