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HBM 기술' 유출됐나…핵심인재 美마이크론 이직 '충격'

5년간 해외유출 K-산업기술 적발만 96건, 반도체 등 핵심기술은 33건
산기법, 이직관리 및 비밀유지 규정 있지만…인재 유출 막기엔 한계

SK하이닉스 이천사업장 M16 전경. (SK하이닉스 제공) ⓒ News1 강태우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SK하이닉스(000660)에서 20여년을 일했던 핵심 연구원이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 임원으로 옮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특히 해당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독점 공급해 온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관여해 온 인물로, 해당 기술이 어떤 식으로든 유출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우리나라 핵심 산업기술 인력의 해외유출을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기법)에 국가핵심기술을 취급하는 전문인력의 이직 관리 및 비밀유지 등에 관한 조항이 있지만, 국가가 개인의 직업 이동 선택에 대한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법 적용이 쉽지는 않다.

8일 반도체업계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에서 D램과 HBM 설계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A 씨는 지난 2022년 7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뒤 미국 마이크론에 임원급으로 이직했다.

A 씨는 SK하이닉스에서 메모리연구소 설계팀 주임 연구원, D팸 설계 개발사업부 설계팀 선임연구원, HBM사업 수석, HBM디자인부서의 프로젝트 설계 총괄 등을 역임했다.

업계에서는 A 씨의 이직으로 HBM은 물론, D램 관련 기술까지 마이크론에 넘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정, SK하이닉스가 A 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 인용 결정을 내렸다.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SK하이닉스가 A 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이를 어길 시 1일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취득한 정보가 유출될 경우 마이크론은 동종 분야에서 채권자와 동등한 사업능력을 갖추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상당 기간 단축할 수 있다"며 "SK하이닉스는 그에 관한 경쟁력을 상당 부분 훼손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국내 핵심기술의 해외유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005930) 전 임원 등이 반도체 공장 도면을 빼돌려 중국에 복제 공장 설립을 시도하다 덜미를 잡혔다. 중국 자본의 투자도 받고 국내 반도체 인력도 스카우트해 범행을 모의했는데, 당시 유출된 기술은 D램 및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 공정기술로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9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24.2.29/뉴스1

이런 식의 산업기술 및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사례는 최근 5년 동안 적발만 사례만 96건에 달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파악한 2019~2023년 산업기술·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건수는 96건이다. 이중 반도체 등 국가핵심기술 유출이 33건이나 됐다.

기업 규모별 산업기술 해외유출 적발건수를 보면 대기업에서 37건, 중소기업 51건, 기타(대학, 연구소 등) 8건이었다.

국가핵심기술의 경우 대기업에서 22건, 중소기업 8건, 기타(대학, 연구소 등) 3건 순이었다.

업종별 산업기술 해외유출 적발 건수는 반도체가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 16건, 전기전자 9건, 자동차 9건 등의 순이었다.

국가핵심기술에서도 반도체(10건) 핵심기술 유출사례가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5건), 전기전자(4건)가 뒤를 이었다.

인재 유출을 통한 해외로의 국가 핵심산업기술 유출이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없다.

현행 산기법 10조에서 국가핵심기술을 취급하는 전문인력의 이직 관리 및 비밀유지 등에 관한 계약 체결을 의무화한 내용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직업 선택 등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침해한다는 점에서 법 적용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현 제도로는 기술유출을 막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퇴직한 인력의 이직 사실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고, 앞선 사례처럼 전직 금지 가처분을 내도 당사자가 해외에 있는 등의 문제로 인용 결정이 나오기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기술과 노하우가 넘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행 산기법에 국가핵심기술을 취급하는 인력에 대해서는 이직 관리, 비밀 유지에 대한 계약을 기업과 근로자가 맺도록 강행 규정으로 돼 있다"면서도 "다만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법으로 제약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 등으로 현실적인 법 적용은 쉽지 않다"고 전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