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조원 쏟았는데 '출산율 쇼크' 심화…"진단부터 다시 해야"

엔데믹에도 커진 하락 폭…"상황 더 악화됐다는 의미"
"인센티브 방식의 '출산 장려 정책' 벗어나 '인생 정책' 필요"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잠정)' 결과를 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전년 대비 1만9200명(7.7%) 감소했다. 이는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2016년까지 40만명대를 유지하던 출생아 수는 2017년 30만명대로 감소했고, 2020년에는 처음으로 20만명대로 떨어지며 빠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8년 연속 줄어들었다. 감소폭 역시 2020년(-30만 명) 이후 3년 만에 가장 컸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정부가 그간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으며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 쇼크는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성 정책이나 출산 인센티브에 머무르고 있는 저출산 대책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전년 대비 0.06명 감소한 0.72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OECD 평균인 1.58명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여파가 끝났지만, 올해도 합계출산율의 내림세는 멈추지 않고 0.6명대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팬데믹이 끝나면서 출산의 전제인 혼인 건수가 늘어났는데 출산율은 과거 5년과 비슷한 추세로 떨어졌다"며 "바꿔 말하면, 만약에 팬데믹이 계속됐다면 성적이 더 나빴을 것이라는 의미이자,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통상 정부가 바뀌면 5개년 단위인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수정 계획을 내놓지만, 윤석열 정부 3년 차인 현재도 아직 4차 기본계획(2021~2025년)의 수정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부모급여 지급, 신혼부부 주거공급 및 자금지원 확대, 늘봄학교 운영, 아동 수당과 영·유아보육료 지원 확대 등의 저출산 대책을 내놨지만, 출산율 하락 기조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강하다.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부터 18년간 저출산 대응에 약 380조 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장기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출산 지표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따라 저출산 정책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진단부터 다시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아이를 낳을 경우에 '인센티브'를 주는 지엽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출산에 대한 의지를 만들어주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정책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영수 교수는 " 거대한 예산을 매년 늘리면서 썼음에도 성적표가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며 "일단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됐고, '가성비'가 굉장히 낮은 방식의 정책이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책의 백화점식 나열이 아닌 취사선택이 필요하며, 아이를 낳을 의지가 있는 기혼자에게만 유리한 '복지 정책'에서 벗어나, 청년들을 향한 '인생·생애 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아이를 낳는 사람에게 한정해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의 저출산 대책이 아닌 주택 가격으로 인한 주거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젊은 세대가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는 자신감과 안도감을 주는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인구평가모니터링센터장은 "몇가지 예산사업으로 끝나는 문제라면 정부 차원에서 해결 가능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라며 "주택가격 안정, 입시제도 개선 등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입법이 필요한데, 정부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만큼 정치권에서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