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가 키운 한국 기업…상속세 폭탄으론 만년 '저평가'[밸류업 코리아]④
상속세 줄이려 주가 상승 눌러…'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상속세 낮추되 주주환원 확대 유도해야"
- 신건웅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 12조원.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유족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다. 정부가 보유한 국유재산 가운데 가장 비싼 경부고속도로(12조1830억원)와 맞먹는 액수다. 다른 기업 오너들도 상속세가 적지 않다.
세금을 내기 위해 대기업 오너들이 주식을 팔거나, 돈을 빌리는 것은 물론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다 보니 상속세를 낮출 방안을 찾게 되고, 상속 지분가치를 줄이는데 몰두하게 된다. 이른바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다.
증권가에서는 한국 증시의 밸류업을 위해서는 세제개편을 통해 상속세를 낮추되, 기업들이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주주환원을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家 상속세만 12조…세금 내려 주식 팔고 돈 빌려
1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직계비속에 대한 기업승계 관련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 달한다. 여기에 최대주주 주식 할증과세까지 더하면 최대 60%까지 늘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기업인 입장에서는 상속받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하는 셈이다. 실제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유족들의 상속세는 12조원이 넘는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역대 최대 규모로,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12조513억원)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LG가(家)도 고 구본무 선대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과 관련해 900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납부했다. 롯데가 역시 고 신격호 명예회장 타계 후 상속세로 약 4500억원을 냈다.
상속세 금액이 워낙 많다 보니 대기업 오너가가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세금을 내는 일도 적지 않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총수가 있는 대기업 집단 72곳 중 상장 계열회사 주식을 보유한 5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월 말 기준 대출 등으로 담보로 제공된 주식은 28조9905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보유 주식 90조3720억원의 32.1% 수준이다.
삼성가에서는 홍라희 여사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삼성물산·삼성SDS·삼성생명 등의 주식을 처분하거나 담보로 대출받은 바 있다.
일부에서는 아예 상속을 포기하고 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는 자녀에게 지분을 넘기는 대신 매각을 택했다.
종자기업 농우바이오도 2013년 창업주인 고희선 명예회장 타계 후 유족들이 1200여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농협경제지주에 사업을 넘겼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세금 문제 등으로 가업 승계 대신 매각이나 폐업까지 고려했다는 기업은 42.2%에 달한다.
◇ 상속세 줄이려면 주가 오르면 안 돼…'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오너가에서는 상속세를 줄일 방도를 찾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가 조정이다. 상속이나 증여 때 최대한 세금을 적게 내려면 가지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낮을수록 유리하다. 주식분 상속세는 고인의 사망일을 전과 후 각 2개월씩 총 4개월간 시가 평균 주식평가액을 기준으로 한다.
대주주가 주식 부양보다는 주가를 누르는 데 관심이 높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주가가 하락할수록 세금을 적게 내고 상속받을 수 있다. 주가 상승을 바라는 소액주주와는 정반대 행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0~40대 벤처·스타트업 창업자 및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높은 상속세가 기업가정신을 저해(93.6%)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96.4%)시킨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폐지하고, OECD 평균(25%) 수준까지 상속세를 낮추되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주주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혜택을 주면서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KCGI자산운용이 조사한 코스피의 주주환원율은 26.7%에 불과하다. 일본 닛케이225(108.5%)는 물론 미국 S&P500(84.3%), 대만 가권지수(49.6%) 대비 현저히 낮다.
글로벌 수준으로 주주환원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주주가 나서야 한다. 세금 부담을 줄여두는 대신 의무적으로 소액주주 및 해외투자자 등과 소통을 강화하고, 기관투자가의 경영 참여를 늘리자는 주장이다. 또 배당을 확대하고,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확대하는 정책이 거론된다. 대주주의 사익 편취를 막고 회사의 장기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이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다투는 미국 애플만 하더라도 지난해 1분기 실적 발표 후 900억달러(약 120조원)의 자사주 매입 계획과 주당 24센트의 분기 배당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거버넌스포럼은 현대차(005380)·삼성전자(005930)·LG화학(051910)·KB금융지주(105560)의 이사회가 재무상태표의 비효율성을 없애고, 주주환원을 제대로 하면 주당 펀더멘탈 가치가 50~120%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의 상속 증여세는 징벌적"이라며 "세제 개편을 하되 경영진이 주주환원이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중소가치팀장도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 등으로 자본시장의 정상화가 구축된다면 높은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아도 세수가 정상적으로 걷히고 고용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현재 상속세가 과도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상속세가 과도한 할증 과세라는 데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며 상속세 개편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k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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