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음주운전 '징역' 발전공기업 직원 '육아휴직' 꼼수…회사는 뒤늦게 징계
수사개시 통보 못 받아…4개월 휴직 끝난 시점에야 해임 처리
성관련 범죄 묻힌 사례도…"수사 결과 공공기관장에 통보해야"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반복된 음주운전으로 실형까지 살게 된 공기업 직원이 회사에는 이 사실을 숨긴 채 육아휴직을 냈던 사례가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다. 회사는 이를 허가했다 휴가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복직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에서야 진상을 파악하고 뒤늦게 해임 처리했다.
수사기관에서 '직무와 관련이 없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해당자에 대한 '수사개시 통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중대 비위행위에 대해선 수사결과를 해당 공공기관의 장에게 통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감사원이 내놓은 '공공기관 임용·징계제도 운영실태 분석'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울산지역에 본사를 둔 한 발전사 소속 직원 A씨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5차례 음주운전에 적발돼 2020년 결국 해임 처리됐다.
문제는 해임되기 전까지의 과정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 등의 중대 범죄행위 발생 시 수사기관은 해당자가 속한 기관에 수사개시 통보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건의 경우 경찰은 '직무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해당 사실을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2019년 5월 또다시 음주운전이 적발돼 재판을 받게 된 A씨는 1심 선고가 있던 그해 11월7일 하루 전에 회사 측에 4개월의 육아휴직을 신청한다.
회사는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였고,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아 구속된다.
이듬해 3월 휴직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회사 측은 복귀 여부 등을 타진하기 위해 A씨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고, 휴직 연장 등을 확인하기 위한 내용증명을 보낸다.
그러자 며칠 후 A씨가 아닌 모친이 휴직 연장서류를 들고 왔고,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은 뒤늦게 해당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수사기관이 '수사개시 통보'를 한 이후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서를 회수하면서 범죄행위가 묻혀버린 사례도 있다.
이 발전사 소속 또 다른 직원 B씨는 2020년 8월 만취한 상태에서 피해자를 추행, 한 달 뒤 준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와 관련 수사를 맡은 울산중부경찰서는 사건발생 직후인 8월6일 회사 측에 해당 직원에 대한 수사개시 사실을 통보했다. 공공기관 임직원 중대 범죄행위 시 공공기관운영법 또는 경영지침에 따라 해당기관에 수사개시를 통보하게 돼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수사개시 통보 문서를 접수한 경찰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 보낸 문서이니 파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사측은 문서를 공식 접수하기 이전 단계였다는 이유로 경찰의 요구대로 해당 자료를 파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경찰의 수사개시 통보문 철회 요청은 사건 당사자 B씨의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한 이의제기가 있었기 때문으로 회사 측은 판단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고, 감사원은 사측에 당시 B씨의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개시 통보문을 경찰 측에 요구해 다시 받을 것을 지시했다.
또 당사자인 B씨에게 해당 사건과 관련한 검찰 송치 후 기소여부 및 법원 판결 결과 등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하지만 B씨는 '사건이 잘 마무리됐다', '요구한 정보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관련 자료 제출에 협조하지 않았다.
결국 사측은 B씨의 범죄사실에 대한 징계는 하지 못한 채 '감사자료 제출 거부'에 따른 사유만을 적용, 정직 1개월의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공공기관 소속 임직원의 성범죄 및 음주운전 등의 중대 비위행위는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그 비위행위를 파악해 당연퇴직, 징계처분 등 적정한 조치를 할 수 있게 수사기관은 수사결과를 해당 공공기관의 장에게 통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발전사 관계자는 "해당 건에 대해 회사 자체적으로 법률 검토를 의뢰했고, 그 결과 진술거부권은 국민이 가지는 기본권이란 해석이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절차가 이뤄진 것 같다"면서 "신분적 특수성이 있지만, 관련 직무와 관계없는 범죄행위에 대한 '자기 신고'까지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애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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