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고금리 오래 유지…섣부른 인하는 집값 자극"

이창용 한은 총재, 경총 포럼 기조연설
"韓 금리 천천히 올려 美처럼 빨리 내리기 어려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제2회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서 2024년 한국경제 전망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 "금리를 섣불리 인하하면 물가와 부동산가격 상승 기대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3월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직후에 한국의 고금리 장기화 방침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2회 한국최고경영자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향후 통화정책과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주요국 통화정책과 물가, 금융안정 등 데이터를 확인하며 운용하되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급한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경계심은 숨기지 않았다. 이 총재는 최근 국내 물가 상황과 관련해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이 크고 주요국보다 생활물가 오름세가 높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시장의 3월 금리 인하설에 대해 선을 그은 데 대해서는 "우리 금리 인하 속도는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연준은 한국시간으로 이날 새벽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시장이 주목한 3월 인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일축했다.

한국은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에 맞추기 힘들다는 분석도 내놨다.

미국과 유럽은 재작년 금리를 매우 가파른 속도로 올렸는데 한국은 그보다 한 해 앞서 (2021년) 한 차례 금리 인상을 해둔 덕분에 관리를 병행하면서 가급적 천천히 금리를 올릴 수 있었다. 이에 내릴 때도 한국은 미국처럼 빠를 수가 없다는 취지다.

이 총재는 "미국과 유럽은 금리를 빨리 올렸기 때문에 빨리 내리는 것이지, 우리는 천천히 금리를 올렸으니 천천히 내릴 것"이라며 "경기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를 내리면 부동산으로 돈이 쏠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 안정을 판단할 때 소비자물가지수(CPI) 하나만 보지 않겠다는 방침도 시사했다. 이 총재에 따르면 CPI 헤드라인 지표와 생활물가는 통상 0.7%포인트 차이가 나는데, 이같이 높은 생활물가는 일반인 기대인플레이션(향후 1년간 물가 상승 기대 심리)에 영향을 미쳐 작은 충격에도 물가가 쉽게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헤드라인 CPI 상승률이 2%대에 진입해도 생활물가나 기대인플레이션 지표 등을 함께 보면서 충분한 확신이 들 때까지 오래 고금리를 유지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문제에 대해서는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낮으나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장기적으로 부동산 가격 안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며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대한 대출 집중으로 자원 배분 효율성이 저하됐다"고 진단했다.

우리 경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으로는 수도권 집중 완화와 출산율 제고를 통한 잠재성장률 확대를 주장했다. 이 총재는 "도시인구 집중도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면 합계 출산율은 0.4명이 오르고 잠재성장률은 2026~2040년 중 0.2%p 오른다"는 분석 결과를 전했다.

미국 경제의 향방과 관련해서는 "양호한 성장과 물가 둔화 지속으로 연착륙 가능성이 증대됐다"고 판단했다. 또 "11월 대선 관련 정치 리스크가 커지면서 재정적자 확대 가능성이 미국 국채금리에 상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도 주장했다. 그는 "중국과의 교역 구조가 보완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변모했다"며 "그동안 누려온 중국 성장의 수혜가 축소되고 있고 주요국 대비 높은 제조업 비중과 중국 의존도를 탈피해 산업 다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