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제]④새해 노동개혁 본궤도 오를까…근로시간 개편 급물살
대법원 '52시간제' 유연성 여지 취지 판결…개편안 속도 낼 듯
노조 회계공시 新규범 정립, 사회적대화 재개에 개혁동력 회복세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노동개혁'을 기치로 내건 집권 3년차 윤석열 정부에 있어 결실을 내야할 중요한 시기다. 지난해가 노동개혁의 원년이었다면 이제는 성과를 보여야 한다.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지난해 '주 최대 69시간' 논란으로 주춤했던 근로시간 개편은 최근 연장근로가 주 12시간을 초과했는지는 '1주간 40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린 대법원 판결로 다시 동력을 얻게 됐다.
한국노총의 복귀로 다시 시작된 노사정 사회적대화도 본궤도에 오르면서 이중구조 문제와 같은 우리 노동시장의 고질적 병폐를 뜯어고치는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는 노사 법치주의 확립에서 시작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다. 양대노총의 반발이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노조 회계공시' 의무는 이제 노동현장의 새로운 규범으로 정립, 조합원의 알 권리와 노조 운영의 민주성 확립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주 69시간'에 멈춰 선 근로시간 개편…정부 손들어준 대법 판결에 급물살
정부가 노동개혁 중 가장 속도를 낸 게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화다. 과로사회에서의 해방이라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발맞춰 현행 근로시간의 총량은 유지하되 업종이나 사업장 규모의 특성을 고려해 일이 몰릴 때 탄력적으로 근무시간을 더 할 수 있게 하자는 게 핵심이다.
연초부터 제도 손질에 속도를 내 정부는 지난 3월 첫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놨다. 연장근로 관리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해 일이 몰릴 때 최대 주 69시간까지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이 적을 때 장기휴가를 통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개편안 발표 직후부터 '주 최대 69시간'이라는 시간개념 논쟁에 불이 붙으면서 정부 입법안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고용부는 현행 주 52시간제에서의 연장근로 총량과 비교해도 근로시간이 늘지 않을 것이며 사업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근로시간의 자율 선택권'에 방점이 찍힌 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 제도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오히려 이를 악용, 장시간 노동사회로 회귀할 것이라는 비판 주장이 대두됐다.
또 정부 입법안에는 보상으로 한 달 이상의 장기휴가도 가능해진다고 하지만, 정당한 연차조차 눈치가 보여 사용할 수 없는 대다수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는 사실상 공허한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사태가 악화하자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주 69시간'은 무리라고 지적하는 등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면서 현장 청년층, 이른바 MZ세대에 대한 여론수렴을 지시했고 고용부는 사상 최대 규모 설문조사를 거쳐 현재 수정 개편안 마련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25일 대법원이 연장근로가 주 12시간을 초과했는지는 '1주간 40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지난 정부안에 다시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일 40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다만 당사자간 합의가 있으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연장이 가능하다. 1·2심은 1주 근로시간 중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을 합산했을 때 12시간을 초과하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연장근로가 주 12시간을 초과했는지는 '1주간 40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을 최초로 내놓은 것이다. 1주간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는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이 같은 취지는 연장근로 총량을 계산하는 단위를 '주' 단위에서 벗어나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늘려 몰아서 일할 수 있도록 추진한 근로시간제도 개편안과 맞닿아 있다.
대법 판결 취지가 정부 근로시간 개편안에 명분을 실어주는 모습이 되면서 수정 개편안 작업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노조 회계 투명화 새로운 규범 정립 '성과'…사회적대화 재개로 개혁 동력 확보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중 가장 두각을 보인 것은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다. 정부는 '법과 원칙'이라는 확고한 신념 아래 역대 정부에서는 하지 못한 노조 회계공시를 의무화했다.
우리 사회 규모가 커지고, 노조의 몸집 역시 급성장한 만큼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노조 회계 의무공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물론 노동계를 양분 중인 양대노총(한국노총, 민주노총)의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정부는 결국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10월부터 지난달까지 노조 회계공시 접수를 마감한 결과 1000인 이상 노조·산하조직 739개 중 675개(91.3%)가 회계를 공시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가맹 노조의 공시율은 각각 94%, 94.3%를 기록했다. 그 밖의 미가맹 노조 공시율도 77.2%였다.
정부는 국민의 투명성 요구에 부응하고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이 제고되는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로 인한 노-정 갈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노사법치'를 내세운 정부의 기본원칙은 '법과 원칙'이다. 일관된 법·원칙 적용은 특혜, 불공정 등으로 비칠 수 있는 일들을 미연에 차단하고,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칫 법·원칙에만 기댄 고지식함은 '소통(疏通)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유연한 자세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말 한국노총의 복귀로 다시 시작된 노사정 사회적대화 재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정식 고용장관은 지난달 29일 지난 한 해 노동개혁 성과 등을 되짚어보고, 올해 노동개혁 추진방향을 밝히기 위해 마련한 '노동의 미래포럼'에 참석, "대법원 판결은 주 52시간제 틀 안에서 필요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합리적 방안을 제시한 것"이라며 "정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근로시간 제도개편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간 상생임금위원회, 경사노위 등을 통해 전문가를 중심으로 논의해 온 이중구조 개선, 노동규범 현대화 방안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면서 "한국노총이 사회적대화에 북귀한 만큼 다양한 의제에 대해 전문가 논의 결과를 토대로 노사정이 실천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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