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90% "韓 불평등 심각"…가난하면 결혼도 못하는 나라

청년층 불평등 인식 깊어…84% "부모 지위 자녀에 대물림"
통계 보니 이유 있었다…소득 하위 남성 20%만 '결혼 골인'

한 활동가가 불평등 해소 촉구 기자회견에서 '무너지는 청년의 삶'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자료사진)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전체의 90%에 가까운 대다수 청년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에 국내 최고 경제 전문가 집단인 한국은행이 실제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청년 인식에는 '이유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대 내 자산 격차가 중장년층인 40·50대보다 20대 청년층에서 더욱 심하면서, 소득 상위 20% 남성은 5명 중 4명꼴로 결혼하는 반면 소득 하위 20% 남성은 4명 중 1명만이 가정을 꾸리는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4일 한은이 전날 발표한 11월 경제전망 중장기 심층연구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를 보면 한은 경제연구원 소속 황인도·남윤미 등의 이런 분석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저자들은 한국 사회의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미만) 원인을 2가지로 제시했다. 바로 청년층이 느끼는 높은 경쟁 압력과 그에 따른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이다.

이에 한은은 청년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를 알아보고자 조사업체에 의뢰해 지난해 말 전국 20~39세 청년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84.9%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평가했다. 향후 10년간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보다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한 응답자도 87.4%에 달했다.

절반을 넘는 67.8%는 개인 노력에 의한 계층 이동 가능성이 적다고 봤으며, 83.5%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교육 등을 통해 자녀에게 대물림된다고 응답했다. 또 61.6%의 청년은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 지위가 자신보다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했다.

전체의 85~90%에 달하는 대다수 청년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감도 자연스레 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은 제공)

이 같은 청년 인식과 관련해 저자들이 통계 지표를 통해 검증한 결과 사실상 청년들의 손을 들어줬다.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양호하다고 보기 어렵고 무엇보다 청년 세대 내부의 불평등도 낮지 않은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예컨대 저자들은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활용해 가구주 연령별 순자산 지니계수를 산출했는데, 오히려 경제 활동 기간이 길지 않을 20대(0.55)가 40대(0.53)나 50대(0.52)보다 자산 격차가 높게 나타났다. 즉, 청년들은 이미 자신들보다 수십년이나 경제 활동을 더한 중장년층보다 세대 내 자산 격차를 깊게 체감 중인 상황이다.

가족 형성에서 불평등도 관찰됐다. 저자들이 2020년 한국노동패널조사 자료를 자체 분석한 결과 특히 남성의 소득(세후 총 연간 근로소득)이 낮을수록 미혼율이 뚜렷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30대 남성의 소득이 상위 20%에 들면 미혼자는 5명 중 1명꼴(21.5%)이었으나, 소득 계층이 내려갈수록 미혼율은 꾸준히 높아져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30대 남성은 미혼율이 77.2%로 4~5명 중 1명만이 가정을 꾸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제공)

문제는 청년들의 이러한 불평등 인식이 저출산을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이스털린의 상대소득 이론에 따르면 불평등 심화는 상대소득을 낮춰 저출산을 유발한다"고 소개했다.

미래 세대에 대한 비관도 출산율에 악영향을 미친다. 199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의 모형에 따르면 자녀가 행복하게 자랄 것이라는 확신을 줄여 출산율을 낮추게 된다.

게다가 저출산은 세대 내 불평등 수준이 높은 고령층의 인구 비중을 높여 실제 경제 전반의 불평등도를 상승시키는 악순환을 형성할 수 있다.

보고서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세대 내 불평등 수준이 높은 고령층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경제 전반의 불평등도가 높아질 것으로 분석됐다"며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소비불평등 증가의 절반이 고령화에서 비롯됐다는 연구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결국 '청년'들이 체감하는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 주거, 양육에 대한 '불안'과 관련 있으며 이것이 결혼과 출산의 연기와 포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