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플레이션에 칼 빼든 정부…"가격 통제가 부작용 낳는다" 우려도
[고물가 비상下] 정부, 식품업체 '꼼수 가격 인상'에 연일 압박 수위 높여
"실패로 판명난 MB식 물가잡기…일시적 착시뿐, 통화정책에 혼선" 지적
- 김유승 기자
(서울=뉴스1) 김유승 기자 = 정부가 식품업체들의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만 줄이는 '꼼수 가격 인상'(슈링크플레이션) 행태에 대해 칼을 꺼내 들었다. 업체들의 눈속임 가격 인상이 체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식품업체를 향해 세무조사까지 거론하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이와 같은 사실상의 가격 통제가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따른다.
1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서울 이마트 용산점을 찾아 식품업체들의 눈속임 가격 인상 행위를 정조준했다.
식품업계 등에 따르면, 해태제과는 지난 7월 한 봉지에 415g이던 고향만두 용량을 378g으로 줄였고, 오비맥주는 지난 4월 카스 맥주 묶음 팩의 1캔당 용량을 375mL에서 370mL로 줄이는 등 식품업체들이 가격은 유지한 채 내용물을 줄이는 형태의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추 부총리는 이에 대해 "소비자가 부지불식간 양이 줄었는데 줄었는지를 모르고 소비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정직한 경영이 아니다"라며 "가격 표시, 함량 표시, 중량 표시가 정확해야 하고, 정확하지 않으면 현행 법규에 따라서 엄정하게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할당관세나 국제 곡물가격 하락으로 이익을 본 업체가 가격을 올리는 행태에 대해선 "기업에 부당 이익이 생기면 결국 세금을 통해 국고로 돌아오도록 하는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며 "편법 회계처리에 대해선 세무당국이 엄밀히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세무조사를 거론하며 기업의 가격 인상 자제를 압박한 셈이다.
정부가 소비자단체 대표와 만나 기업의 가격 상승에 대해 목소리를 내달라고 당부하는 이례적 모습도 연출됐다.
홍두선 기재부 차관보는 15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찾아 소비자단체 대표 등과 간담회를 갖고 "다양한 품목에 대한 물가감시 활동을 하면서 꼼수·편법이나 과도한 가격 인상, 원가하락 요인 미반영 등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달라"고 했다.
이처럼 정부가 식품 기업들을 향해 압박 수위를 높이는 배경에는 이들 업체가 물가 상승기에 편승해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그리드플레이션'(탐욕+인플레이션)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식품 업체의 탐욕이 소비자 체감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 안정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식품업체들의 실적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심의 영업이익은 117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4.5% 늘었고, 빙그레(160.3%), 해태제과(75.5%), 풀무원(33.2%) 등도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다만 기업들의 양호한 영업이익에 비해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값)은 대체로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어 가격 인상을 탐욕과 연결지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상반기 15.3%의 영업이익률을 거둔 오리온 등을 제외하면 빙그레(8.7%), 오뚜기(7.6%), 농심(6.9%) 등 주요 식품업체들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업체들은 이같은 영업이익률이 통상 10%를 넘기는 다른 제조업계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점차 수위가 높아지는 정부의 가격 통제가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들이 정부의 압박으로 가격 인상 시기를 미루다 나중에 한꺼번에 올릴 경우 통화정책에도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누른 만큼 가격은 더 튀게 돼 있다"며 "과거 이명박 정부의 가격 개입 사례인 'MB물가지수' 50개 품목 가격의 5년간 추이를 보면 소비자물가보다 1.6배 더 올랐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압박으로 잠시 물가가 잡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가격 통제가 느슨해지면 기업들이 뒤늦게 인상에 나설 것"이라며 "한국은행이 잘못된 소비자물가지수에 기반해 통화정책을 결정할 위험성도 커진다"고 했다.
k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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