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끊기고, 산별노조 탈퇴 바람…"정치 투쟁보단 노동자 대변을"

올해 44억원 규모이던 고옹부 노조 지원 예산 내년 '0원'
엎친 데 덮친 민주노총, 공무원 등 산별노조 탈퇴 잇따라

고용노동부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조에 지급되던 보조금을 폐지하고 노동개혁 추진과 청년·노인 일자리, 맞벌이 부부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의 경우 44억원을 노조에 지원했는데, 내년에는 이를 전액 삭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총 사옥 모습. 2023.8.30/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윤석열 정부가 노사법치주의를 내세운 노동개혁 강공 드라이브를 이어가는 가운데 내년에는 노조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두 양대 노총 중심으로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지원은 더 이상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정부는 두 노조에 회계투명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에서는 산하 산별노조들의 탈퇴 러시가 잇따르면서, 기존 노조가 무리한 정치파업을 이어가기보다는 조합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내년도 예산에 노조 지원금 전액 삭감…불공정 노사관행도 정조준

정부는 내년도 고용노동부 소관 예산 중 노조에 지원해 온 보조금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3일 고용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내년도 33조6000억원의 본예산안을 편성,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올해 본예산(34조9500억원)보다 3.9%(1조3500억원)이 줄어든 규모다.

주요 삭감 예산은 노조에 지원해 온 보조금, 사회적기업 지원금, 실업급여 관련 등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노조관련 보조금 전액 삭감이다. 올해 본예산에 44억원을 편성한 것과 달리, 내년에는 단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줄곧 강조한 '이권 카르텔' 혁파와 무관치 않은 행보로 보인다.

그동안 노조 보조금은 노동자 권익보호 등을 위해 노조 간부 및 조합원 교육·연구·상담·국제교류 사업 등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문제는 이런 정부 보조금의 90%가 양대노총에 편중‧지원됐다는 점에서 정부여당 안에서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게 '노조 회계장부 투명성 강화'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노사 법치주의 확립 추진계획을 밝히면서, 노조에 지원하는 공적자금의 사용내역 등을 제대로 알 길이 없다는 데 문제인식을 제기했었다.

이후 지난 4월에는 법 개정을 통해 노동단체 지원사업 대상범위를 확대·개편하기도 했다. 양대노총에 편중된 보조금 지원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고, 노조가 아닌 근로자단체 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의도였다.

6월에는 회계공시 미이행 노조에 대한 세액공제 배제, 회계감사원 자격 구체화, 결산결과 공표시기·방법 등을 규정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시행령'과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해당 개정안은 국무회의 상정·의결 등의 과정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정부는 불공정 노사관행과 관련한 '노조 운영비 원조 현황' 전수조사 결과 공개도 앞두고 있다. 조만간 결과 분석을 마무리해 발표할 계획이다.

중간 공개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근로자 1000인 이상 전체 사업장 중 노조가 있는 사업장 521개소(공공기관 포함)를 대상으로 노조 운영비 원조 현황을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일부 사업장 노조는 사용자로부터 '노조 전용 자동차 10대'와 '수억원의 현금'을 받거나, 노조 사무실 직원의 급여까지 지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부 사업장은 근로시간 면제자가 315명으로, 면제한도를 283명이나 초과한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정식 고용장관은 지난달 28일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용자의 위법한 근로시간면제 적용과 운영비 원조는 노조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침해하고, 건전한 노사관계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노사는 물론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면서 "불법적인 노조전임자와 운영비 원조 운영실태를 파악하고, 부당노동행위 감독도 강화하겠다"고 노조를 압박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조에 지급되던 보조금을 폐지하고 노동개혁 추진과 청년·노인 일자리, 맞벌이 부부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의 경우 44억원을 노조에 지원했는데, 내년에는 이를 전액 삭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30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 앞 현수막 모습. 2023.8.30/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안동 공무원 노조 이어 경북 소방관 노조도 민주노총 탈퇴 러시

정부의 대(對) 노조 압박에 더해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산별노조 탈퇴 러시가 잇따르는 등 내홍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경북지역 전공노 소속 소방본부 조합원 1000여 명 중 약 800명이 노조를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방본부 경북지부장을 포함한 500여 명의 탈퇴 처리는 이미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노총을 탈퇴한 소방관들은 소방통합노조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관 노조는 2021년 7월 공무원노조법 개정으로 소방공무원의 노조 활동이 허용되면서 닻을 올렸다. 현재 민주노총 산하 전공노 소방본부를 비롯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소방공무원노조,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전국소방노조 등 4개 단체가 활동 중이다.

일반직 공무원노조에서도 민주노총·전공노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전공노 안동시지부는 지난달 29일 조합원 투표를 거쳐 민노총 및 전공노를 집단 탈퇴하는 조직형태 변경 안건을 의결했다.

안동시지부는 다음 날인 30일 고용노동부 안동지청에 기업별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하고, 독립 노조 전환을 추진 중이다. 공직사회에서의 전공노 집단탈퇴는 2021년 8월 강원 원주시노조 이후 2년 만이다.

유철환 지부장은 "전공노는 윤석열 정권 퇴진, 사드 배치 반대 등 정치투쟁에 공무원들을 동원했다"며 "젊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투쟁에 대한 거부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탈퇴 결정 배경을 밝혔다.

정부가 집단탈퇴를 금지하는 산별노조 규약을 불법으로 판단하고, 철폐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린 것 또한 탈퇴 러시에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는 최근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불법·불합리한 단체협약 및 노조규약 실태 확인'에 나서면서, 산별노조의 집단탈퇴를 막은 규약에 적극적으로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보다 앞선 지난 6월에는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포항지부 포스코지회가 상급 단체에서 탈퇴하고 '포스코자주노조'로 전환한 바 있다.

노동계 한 인사는 "비단 공무원 노조만의 상황인식은 아닐 것"이라면서 "투쟁의 목적을 '정치'로 끌고 가기보다 진정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의 대변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