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집값방어에 가계대출 늘었다" 작심발언 쏟아낸 한은 금통위

"디레버리징 거의 안 됐다…정부정책이 금리상충"
특례보금자리론 운영도 지적…"신규 대출 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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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관한 우려 섞인 견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확인됐다.

기준금리를 3연속 동결한 금통위원들이지만, 자칫하면 부동산 규제 완화 등이 가계부채 감축(디레버리징)을 제한하면서 긴축 통화정책을 상쇄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16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관련 부서와 복수의 금통위원들은 이 같은 견해를 내비쳤다.

먼저 한은 관련 부서는 금통위원들에 대한 의견 제시에서 "최근 부동산 규제 완화는 금융불안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금융불균형 해소를 지연시켜 중장기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해당 리스크 요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목적으로 한 정부 규제 완화가 가계대출 감축을 방해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당초 한은은 2021년 8월 금리 인상기에 돌입하면서 그 이유로 우리 경제에 누적된 금융불균형(과도한 부채 활용과 자산가격 급등)을 들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보다 한 발 앞서 고통스러운 금리 인상에 나섰던 원인 자체가 막대한 가계부채에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은은 부동산 규제 완화가 당초 한은이 금리 인상을 시작했던 이유와 어긋날 수 있다는 '정책 상충', '정책 엇박자'에 대한 지적을 내놓은 걸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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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금통위원은 사상 유례없이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에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감축은 거북이걸음이라고 꼬집었다.

이 위원은 "고금리 정책으로 전 세계적인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이 진행되는 중에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디레버리징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흡한 부채 감축의 원인 중 하나는 부동산 정책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가계부채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택시장 연착륙 목적의 정책 시행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나면서 정책 간에 상충이 발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다른 위원은 최근 나타난 가계대출 증가세를 콕 집어 지목하면서, 정부의 정책금융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 운영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언급했다.

이 위원은 "4월 들어 금융권 가계대출이 증가로 전환한 것은 시장금리가 하락한 점도 영향을 미쳤겠으나 특례보금자리론 실행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례보금자리론 시행 초기에는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는 대환대출이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최근에는 해당 정책이 신규대출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주택시장 연착륙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특례보금자리론 한도가 신규로 과도히 늘어나지 않도록 정책 당국과 잘 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은 관련 부서도 "특례보금자리론 한도 약 40조원의 80% 정도가 소진된 상황"이라면서 "특례보금자리론 실행은 주택시장의 연착륙에 초점을 둔 정책이기 때문에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금융불균형을 우려하는 중장기적 시계에서의 정책 목표와 일부 상충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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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과 금통위가 이처럼 정부 정책을 직접적으로 꼬집은 것은 최근 부동산 시장 부진이 완화되면서 가계대출이 다시금 꿈틀대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발표한 5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은 한 달 전보다 4조2000억원 늘었다. 이는 2021년 10월(5.2조원 증가) 이후 1년7개월 만에 최대 증가다.

한은은 올해 1월 기준금리를 연 3.50% 수준으로 올린 이후 지난 2월부터 4월, 5월까지 3회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올초보다 하반기에 가까운 지난달에 거꾸로 가계대출이 늘어난 것이다.

가계대출 증가세의 원인은 주택 관련 대출의 확대였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풀고 은행도 한은의 연속 동결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에 대출금리를 낮추면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중도금대출 등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은은 지난 8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도 과도한 집값 수준과 가계부채 감축 지연이 우리 경제를 중장기적으로 저해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은은 "주택가격이 여전히 소득수준과 괴리돼 고평가돼 있으며 가계부채 비율도 최근 하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이는 등 누증된 금융불균형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