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 下] 한은도 국민연금도 영향권…국내 파장 어디까지?

美 빅스텝 기대 꺾여 환율 수직하락…한은 금리결정 숨통
위험 회피심리 부각땐 외자유출↑…국민연금 손실도 문제

지난 10일(현지시간) 파산 절차에 들어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 AFP=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 따른 영향이 우리 경제 어디로까지 미칠지 관심이 모인다.

SVB 파산으로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가속할 것이라는 기대가 꺾이자 전날(13일) 환율은 수직 하락했다. 자연스레 한국은행의 4월 기준금리 결정에는 여유가 생겼고, 시장에서는 한은의 연속 동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반면 앞으로 위험 확산 경계심과 함께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확산할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과 외화 유출 규모는 불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SVB 모회사에 물린 지분 약 300억원 상당의 향방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15년 전과 달라진 美…"시스템 위기까진 아냐"

14일 한은과 정부에 따르면 SVB 사태가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

우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제도권 은행들의 건전성은 크게 개선됐다. 여기에 미 정부가 예금자 보호 조치를 즉시 시행한 점을 봤을 때 사태 수습에 대한 의지가 금융위기 때와는 사뭇 다른 걸로 추정된다.

박민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상황과 달리 미국의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 환경은 매우 견실하다"며 "은행 업계가 유동성 경색·위기에 직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도 "현재로서는 SVB·시그니처뱅크 폐쇄 등이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 AFP=뉴스1

◇'연준 동결론'까지 대두…한은 4월 동결 가능성

오히려 이번 사태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긴축 행보를 제약해 한은이 받는 금리 인상 압력을 낮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당초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었다.

연준은 지난해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사상 유례 없는 통화 긴축을 이어갔다. 그러다 긴축 속도를 줄여 지난달엔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 모처럼 감속했다. 하지만 고용과 물가가 확실히 제어되질 않자 이달 빅 스텝(0.50%포인트 인상)으로 다시 속도를 붙일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연준이 실제 빅 스텝을 단행할 경우 SVB발(發) 신용 위험은 다른 은행으로까지 번진다는 우려가 빗발치고 있다. 연준이 빅 스텝에 부담을 느낄 상황이다.

심지어 월가는 연준이 이달 금리를 동결한다는 희망 섞인 예상을 내놨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오는 22일 금리 인상을 멈춘다는 예상은 전날 금리 선물 시장에서 약 15% 확률로 반영됐다. 지금껏 시장에 전혀 없던 동결론이 등장한 것이다. 나머지 확률(약 75%)도 모두 베이비 스텝에 쏠렸고 빅 스텝 기대는 전멸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은 이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고 점도표도 소폭 상향할 것"이라면서 "사태가 단발적으로 끝난다고 해도 그 기간에 미 물가는 추세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과열된 고용도 진정될 가능성이 높아 연준의 긴축이 강해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한은 입장에서 연준의 감속은 한미 금리 차를 축소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운, 국내 상황에 입각한 금리 결정'을 돕는 요인이다. 특히 한국시간으로 14일 밤 발표될 미국 물가 지표가 예상에 부합하고 이에 연준이 브레이크를 밟으면 한은은 4월 금리 차 부담을 던 채로 연 3.50% 금리 동결을 이어갈 수 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환율 하락세?…금융 불안 땐 확신 못해

한미 금리 차 축소는 환율 오름세를 완화하기도 한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전날 하루 새 22원 수직 하락한 1300원 초반대에 마감했다. 그간 미국의 긴축 강화 기대에 1330원 턱밑까지 치솟았던 상황과 뚜렷이 대조된다.

물론 환율 하락세가 계속되리라곤 확신할 수 없다. 아직 연준의 금리 결정은 확정된 게 아닌 터라 뚜껑을 열 때까진 등락을 반복할 여지가 있다.

환율만 아니라 금리, 주가도 마찬가지다.

한은은 "이번 사태가 투자 심리 등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연준의 긴축 완화 기대가 부각되면서 환율이 내리는 형세지만, 향후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가 우세해지는 경우에는 외국인 자금 이탈, 원화 가치 하락 등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외국인 채권 투자 자금은 지난달 6800억원 넘게 빠지면서 석 달 연속 순유출을 기록했다.

박민영 신한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가 안정된다고 하더라도 금융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13일 장 마감을 맞은 서울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 2023.3.13/뉴스1

◇국민연금 300억 물렸다…손실 불어날 수도

국민의 피부에 보다 와 닿는 소식은 국민연금 등의 수백억원대 투자 손실 가능성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는 지난해 말 기준 SVB 금융그룹 지분 약 307억원과 61억원 상당을 각각 보유했다. 총합 368억원에 달한다.

양측 모두 작년 말이나 올해 들어 보유 지분을 축소했다고 밝혔으나, 모두 더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평가액이 위험에 처한 상황으로 풀이된다.

심지어 국민연금의 경우 앞선 보유액은 직접운용만 포함한 규모다. 위탁운용까지 포괄할 경우 손실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공시에 따르면 위탁운용을 포함한 연금의 SVB 그룹 주식 투자 평가액은 2021년 말 기준 3624억원이다.

여기에 SVB 이후 폐쇄된 시그니처은행, 위기설에 몰린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의 주식까지 더하면 평가 손실은 불어날 수밖에 없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