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 밟은 미국…한국도 '금리인상 속도조절' 탄력
미 연준, 기준금리 0.5%p 올려…'자이언트' 보폭 축소
한미 금리차 0.75%서 1.25%p로…1월 한은 금리 오를까
- 김혜지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에서 '빅 스텝'(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금리 인상의 속도 조절을 단행했다.
한국에서도 내년 긴축 속도 조절론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은 1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 기준금리를 기존보다 0.50%포인트(p) 높인 4.25~4.50%로 운용하기로 했다. 앞선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p 인상)에서 보폭을 한 단계 좁힌 것이다.
연준의 이 같은 속도 조절은 미국 내 물가가 비로소 완화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현지시간으로 전날 발표된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7.1%로, 시장 예상치였던 7.3%를 밑돌았다. 지난해 12월 이후 11개월 만에 최소 폭이었다.
물가 지표의 완화를 확인한 연준은 지난달 말 예고대로 금리 인상의 속도 조절을 단행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30일 연설에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시간이 이르면 12월 회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1.25%p다. 만일 미국이 이번에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면 격차는 1.50%에 이르면서 기존 역대 최대 폭으로 금리가 역전될 수 있었다.
연말 금리 역전 폭이 1.25%p에 그쳤다는 사실은 금리를 빠르게 높여야 한다는 한은의 부담을 덜어준다.
한은이 지난 7·10월에 단행한 빅 스텝은 고물가만이 아니라 한미 금리차 확대 등에 따른 환율 불안을 개선하기 위한 면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달러·원 환율이 1200원대 후반으로 떨어지는 등 안정세를 찾고 있다.
경기 둔화 우려도 속도 조절론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은은 지난달 경제 전망에서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1.7%로 제시했다. 우리 경제가 이 정도 성장했던 해는 코로나19나 글로벌 금융위기, 외환위기 등 대형 악재가 터졌던 때가 아니고서는 손에 꼽는 수준이다.
이에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앞으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방침을 밝히면서도, 연준의 금리 인상을 기계적으로 따라가기보다는 경기나 부동산, 금융 등 국내 상황을 살피면서 결정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속도 조절론은 이미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내부에서도 제기된 상태다.
한은 기준금리를 0.25%p 올리기로 결정했던 지난달 금통위 회의 의사록을 보면,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추가 금리 인상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비둘기파이거나 긴축 기조를 이어가되 그 속도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속도 조절 진영에 속했다.
물론 기조적 물가가 아직 높고, 긴축 속도 조절은 최근의 자금시장 불안이나 부동산 경기 위축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매파적인 시각도 2명 있었다. 하지만 많은 위원들은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0%로 전월비 0.7%포인트 떨어진 점에 기초해 '물가가 정점을 지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을 내놨다.
한은의 속도 조절에 힘을 싣는 요소에는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도 있다.
예컨대 지난 9월 말부터 불거진 단기자금시장 불안은 레고랜드 사태 등 금리 외적인 요인이 촉발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상 첫 6회 연속 금리 인상이라는 급속한 긴축이 불씨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많다.
이처럼 자금·신용 경색 위험이 잠재한 가운데 다시 빅 스텝 등으로 긴축 속도를 높이는 것은 자칫 금융시장의 뇌관을 때릴 수도 있다.
이에 한은 금통위는 내년 1월13일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기준금리 0.25%p 인상으로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한미 금리 격차는 한은이 내년부터 브레이크를 밟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이번 빅 스텝으로 한미 금리 역전 폭은 기존 0.75%p에서 1.25%p까지 확대됐다. 지난 1996년 6월~2001년 3월 당시의 역대 최대 역전 폭인 1.50%p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지난달 회의에서 속도 조절론을 지지한 금통위원들은 대부분이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등을 '조건부'로 내세워 금리 인상에 신중할 것을 주장했다.
즉, 앞으로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유출이 일어나거나 환율 안정이 깨지는 현상이 뚜렷해진다면 한은은 다시 빅 스텝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이번 FOMC 이후 시장 금리 변동성의 방향은 위쪽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환율이 1300원을 하회하고 있지만 추세적인 하락을 기대하기는 이르다"면서 "환율은 내년 1분기 이후 글로벌 경기가 저점을 통과하면서 하락 추세로 돌아설 것이고 이전까지는 변동성이 확대되는 흐름을 보일 전망"이라고 밝혔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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