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제 더 암울"…빅스텝-고용둔화에 소비마저 먹구름

수출부진, 소비로 버텼는데…금리·고용·물가 '소비 3중고'
내년 한국 성장률 2% 턱걸이…정부, 아직 물가안정 최우선

(자료사진) 2022.10.3/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이듬해 한국 경제를 둘러싼 우려가 짙어졌다. 금리 인상과 고용 둔화 전망 탓에 올들어 성장을 견인한 소비마저 먹구름이 꼈다.

내년 성장률 전망은 이미 2% 안팎까지 후퇴한 상태다. 이는 잠재 성장률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경기 침체와 고물가가 함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려는 분위기다.

1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 증가율은 6.4%로 전월(22.5%)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할인점 증가율 역시 0.8%로 전월(7.7%)을 크게 밑돌았다.

소비 둔화 조짐은 또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매업체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 지수는 기준치(100) 훨씬 아래인 73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2년 집계 이래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최근 단행한 기준금리 '빅 스텝'(0.5%포인트 인상)은 이자 부담을 늘려 가계의 소비 온도를 식힐 것으로 우려된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0.50%포인트 인상되면 전체 대출자의 이자액은 6조5000억원 불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차주 1인당 이자 부담이 평균 32만7000원 증가하는 셈이다. 한국은 가계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는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 하락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승한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이달 그린북 브리핑에서 "최근 자산 가격이 주식, 부동산 할 것 없이 다 크게 빠지고 있어 그런 부분에 있어 금리 인상이 소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소비에 숨통을 터 주던 고용 호조세도 서서히 빛이 바래는 모습이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과 비교해 70만7000명 증가했다. 올들어 지속된 80만~110만명대 증가세가 9개월 만에 70만명대로 꺾인 것이다.

기재부는 앞으로 취업자 증가세 둔화와 함께 고용률은 유지 내지 소폭 하락을 전망했다. 특히 내년엔 경기 불확실성으로 둔화세가 확대되리라고 예상했다.

최근 물가마저 높아 소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은 등은 내년 초까지도 5~6%대 높은 물가 오름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해외 기관들의 최신 전망을 보면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 전망은 △국제통화기금(IMF) 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 △아시아개발은행(ADB) 2.3% △피치(Fitch) 1.9% 등으로 대부분 1%대 후반~2%대 초반을 가리키고 있다.

국내 기관도 마찬가지로 △한은 2.1% 미만 △정부 2.5% 미만 △한국개발연구원(KDI) 2.3% △국회예산정책처 2.1% △현대경제연구원 2.2% 등 2% 턱걸이를 예상하고 있다.

이는 2%대 중후반에 형성된 올해 성장률 전망치보다 크게 낮으면서, 작년 말~올초에 발표된 내년 전망치보다는 0.2~0.8%포인트가량 크게 하향 조정된 수치다.

대부분 기관들은 내년 성장률을 낮춰 잡은 이유로 수출 둔화를 꼽았다.

피치는 "글로벌 경기의 급격한 둔화와 서비스 소비 전환 등이 한국의 수출과 설비투자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KDI는 "2023년에는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성장률이 하락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내수까지 위축될 경우 성장 엔진이 꺼질 위험성이 있다.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 부진을 소비로 버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7%로, 이 중 민간소비의 기여도가 1.3%포인트였다. 순수출 기여도는 마이너스 1.0%포인트로 오히려 성장을 끌어내렸다.

그럼에도 아직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물가를 지금 잡지 못하면 인플레 기대 심리로 인해 물가 오름세가 장기화할 수 있어서다.

인플레 기대 심리를 차단하지 못하면 임금과 인플레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물가 상승→임금 인상→추가 물가 상승'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런데 한은에 따르면 향후 1년간의 물가 상승률을 가늠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9월 4.2%로 집계됐다. 8월(4.3%)보다 0.1%포인트 낮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이에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해 "물가와 민생경제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또 14일 미국 출장길에선 경기 부양책을 검토하냐는 질문에 "내년 경기가 얼마나 안 좋아질지 비관적 시나리오로 예단해 재정을 확장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현재의 재정, 예산, 세제개편안 기조에 변화를 줄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연말연시에 점차 성장 둔화의 그림자가 겹치면 정부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년 성장률은 윤석열 정부가 지난 5월 출범 이후 처음으로 온전히 받아드는 '연간 경제 운용 성적표'다.

물론 정부는 아직 고용 호조세가 탄탄한 덕분에 가계가 코로나 동안 쌓은 저축을 소비로 쓸 여지가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이승한 과장은 "소비 회복 기조는 금리 인상, 자산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유지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당연히 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 제약은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