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요금 인상 이번이 '끝' 아니다…정부 '가격 현실화' 드라이브
전기 7.4원, 가스 2.7원↑…정부, '인상 억제가 능사 아니다' 판단
전기요금 프랑스 25% 수준…에너지價 진정 안되면 지속 인상 가능성
- 이정현 기자, 나혜윤 기자, 임용우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나혜윤 임용우 기자 = 글로벌 에너지가격 급등에 따른 충격파가 전기·가스요금 인상으로 옮겨 붙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꺾일 줄 모르는 인플레이션 상황 속 국민 부담을 이유로 고민하던 정부도 결국 에너지발 위기 앞에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 4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은 이런 맥락에서 이전까지의 일회성 요금인상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부는 이참에 주요국에 비해 값싼 에너지가격 현실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에너지 과소비를 막는 '수요 효율화'를 꾀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중장기적인 에너지 가격 인상을 시사한 것으로, 당분간 서민부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가스요금 인상 지속 전망…정부 '에너지가격 현실화' 드라이브
30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10월부터 전기요금은 1㎾h당 7.4원(산업용 1㎾h당 7.0원 또는 11.7원), 민수용(주택·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은 1MJ당 2.7원이 각각 오른다. 이미 예고됐던 인상분 외에 추가 인상이 이뤄진 것으로, 국제 연료비 인상분이 반영된 금액이다.
국내 인플레이션 상황 속 4분기 전기·가스요금을 발표하기까지 정부가 한 고뇌의 흔적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당초 지난 21일로 예고한 발표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업부와 물가당국인 기획재정부 간 협의가 이어졌고, 사실상 10월 요금적용을 위해서는 마지막 기한인 이날에야 전격적인 발표가 이뤄졌다.
'국내 인플레이션 상황 속 국민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는 물가당국과 '글로벌 에너지 값 급등 속 가격 현실화는 불가피'하다는 산업당국의 온도차가 있었지만, 결국 큰 틀에서 이전처럼 인상을 억누르는 방식도 곧 부메랑이 돼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부 결정에서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에너지 수요 효율화'를 위한 대책이다.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전기·가스요금 체계의 체질 개선을 이뤄내겠다는 것인데, 사실 궁극적인 방향은 주요국에 비해 값이 싼 에너지 가격을 현실화하겠다는데 맞춰져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사용자의 소비가 줄 테니 자연스럽게 에너지 과소비는 막으면서 ‘'가격 현실화'까지 이뤄낼 수 있다는 논리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29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전기요금은) 훨씬 올라야 한다. 우리 전기요금은 독일의 2분의 1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며 "가격을 낮추면 에너지 안 써도 되는 사람이 더 쓰게 되는 데 비싸지면 꼭 필요한 사람이 쓴다"고 이미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향후 요금인상을 위한 단계적인 플랜도 제시했다. 전기요금은 현재 유명무실한 '연료비 연동제'를 보다 강화·적용하는 방식으로 운영, 연료비 증가분을 요금에 실질적으로 반영한다. 또 300㎾ 이상을 사용하는 대용량 사용자에 대해서는 요금 차등적용 등을 추진한다. 일단 산업용 요금도 인상을 결정했는데, 향후 요금체계 전반을 개편하겠다는 구상이다.
현행 불요불급한 특례·할인제도도 정비하는 등 요금제 합리화에도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농업용 특례 제도 등에 대한 개선·보완을 검토 중으로, 일단 이번 안에는 대기업에 대한 농업용 특례 적용을 없애는 방안이 담겼다.
가스요금의 경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 중인 미수금을 내년부터 정산단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회수에 들어간다. 당장 10월 적용할 요금 단가에서 민수용 요금을 15.9%로 올리는 등 최고 폭 인상하는 것으로, 요금 현실화를 위한 첫걸음을 뗐다.
◇주요국 비해 터무니없이 싸다는데…다른 나라 어떻길래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올해 3분기 전기요금이 6년 전인 2016년보다 최대 1000%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인상률은 약 8% 오른 데 그쳤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작성한 '분기별 평균 전기 도매가 및 선물가격 추정'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1분기 인덱스 전기가격을 100으로 했을 때, 프랑스의 올 3분기 전기 도매가격은 1135를 기록한 데 이어 4분기에는 3026으로 급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과 영국은 3분기 각각 1138, 665에서, 4분기에는 1692, 1202로 상승할 것이라는 게 IEA 분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8% 인상하는 데 그쳤다.
한전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평균 전력 판매(소매)가격은 119.9원으로, 2016년 국내 평균 전력 판매가격(111원)에 비해 8.02% 증가했다.
10월로 예정된 인상분 7.4원을 반영하더라도 올해 총 19.3원 올라 평균 판매가는 127.3원에 불과하다. 단순 비교했을 때 국내 전기요금(127.3원)은 프랑스(환율 1430원 적용, 464.75원)나 영국(496.21원)의 25%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심지어 이들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적정 가격'을 유지하면서도, 현재의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에 따른 국민 부담을 우려하면서도 에너지 가격 정상화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명분이다.
독일은 겨울철 난방 온도를 19도로 제한하고, 사우나나 공공수영장 온도를 현재보다 5도 이상 낮추는 방안을 병행하기로 했다. 스페인도 공공기관과 쇼핑몰, 기차역, 영화관 등에서 난방 온도를 19도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이달 말 에펠탑 등 주요 건축물의 조명을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끄기로 했다. 핀란드는 사우나를 1주일에 한 번만 하자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펼친다. 이 캠페인은 1970년 오일쇼크 이후 52년 만에 등장했다.
◇전기요금 1kWh당 7.4원, 가스요금 1MJ당 2.7원↑…4인 가구 월평균 부담액 7670원
이날 한국전력은 10월 요금 적용분부터 모든 전력소비자를 대상으로 1kWh당 2.5원을 추가 인상한다고 밝혔다. 기존에 예고됐던 기준연료비 1kWh당 4.9원을 포함하면 주택용 요금은 모두 7.4원이 오른다. 4인 가구 월평균 추가 부담금액은 2270원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산업용 요금도 인상된다. 산업용(을)·일반용(을) 전기를 사용하는 대용량 사용자 부담이 늘었는데, 산업용은 모든 소비자 대상 인상분인 ㎾h당 2.5원을 포함해 고압A 전기는 ㎾h당 7원, 고압BC 전기는 ㎾h당 11.7원 오르게 된다.
10월부터 민수용(주택·일반용) 도시가스 요금도 1MJ당 2.7원 오른다. 지난해 말 이미 예고했던 정산단가 인상분 0.4원(MJ당)에 더해 기준원료비 명목 인상분 2.3원(MJ당)을 반영한 금액이다.
인상률은 주택용 15.9%, 일반용 16.4% 또는 17.4%다. 이번 요금인상으로 실질적으로 서민가구(4인 가구)가 부담해야 할 인상액은 주택용 요금은 1MJ당 16.99원에서 2.7원 인상된 19.69원, 일반용(영업용1) 요금은 19.32원이다. 월별 요금으로 환산하면 서울시 기준 가구 평균 3만9380원으로 종전(3만3980원)보다 54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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