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성적표 잘 나와야"…물가 부채질에도 내수 장작땐다

정부 "소비행사·쿠폰으로 연말 경기 반등 극대화"
연간 물가 9년만에 2%대 전망…"서민부담 줄여야"

한 상가의 임대 문의 안내 옆 구인 광고문. 2021.11.3/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물가 안정과 내수 활력 사이 진퇴양난에 빠진 정부가 올 한 해 더 나은 경제 성적표를 받기 위해 내수 부양 쪽으로 무게 중심을 좀 더 기울인 모습이다.

올 연간 소비자물가가 정부 안정 목표치를 넘어 9년 만에 2%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나, 정부는 물가를 부채질할 수 있는 소비 진작 대책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5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남은 연말 경기 반등 폭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 내수 활력 복원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억원 기재부 제1차관은 전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4분기 경기 반등 폭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내수 활력 복원에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견조한 수출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도록 물류 지원 등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시작된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에 맞춰 코리아세일페스타 등 대규모 소비행사를 열고 9대 소비쿠폰 공급도 재개했다.

이러한 방침은 최근 국내총생산(GDP) 성장세가 '민간소비 감소'에 제약을 받았다는 분석에 기초했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3분기 성장률이 전기비 0.3%로 시장 기대치보다 낮게 발표된 지난달 26일 "민간소비 감소가 GDP 성장세를 제약했으나 수출이 버팀목 역할을 했다" 진단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연말 소비가 반등하지 못할 경우 올 한 해 경제 농사가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국가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로서는 가장 뼈아픈 실책이다.

이에 이달 들어 정부는 부쩍 소비 진작 대책을 언급하는 빈도가 늘었다.

안도걸 기재부 제2차관은 지난 2일 재정관리점검회의에서 "남은 11~12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경제 회복세 보강과 민생 경제 활력 제고를 반드시 이끌어야 한다"며 "11월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추진으로 내수 활성화를 도모할 계기가 마련된 만큼 이를 경제 활성화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정부의 내수 활성화 대책이 치솟는 물가에는 거꾸로 악재에 가깝다는 점이다. 정부가 내수 부양을 위해 푼 재정과 이로 인해 증대된 수요는 '장작' 역할을 해 물가를 자극할 소지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2% 오르면서 2012년 1월(3.3%) 이후 9년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물가 상승률이 3%대로 올라선 것부터가 9년8개월 만의 일이다.

국내 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부터 7개월 연속으로 2%를 넘긴 상태다. 올들어 10월까지 누계 상승률은 2.2%로, 정부의 물가 안정 목표인 연간 2% 방어는 힘들어 보인다. 남은 두 달간 1%대 중반을 유지해야만 목표를 지킬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정부는 이달부터 △농수산 △외식 △공연 △숙박 △체육 △영화 △여행 △전시 △프로스포츠 등 9대 분야에 2282억원(지난달 15일 기준)의 예산으로 남은 소비 쿠폰 발행을 재개했다.

우리나라 최대 쇼핑 행사인 코리아세일페스티벌(코세페)은 역대 최대 규모로 계획했다.

2차 추경으로 재원을 마련한 상생소비지원금(카드 캐시백) 7000억원도 하반기 중 풀린다. 이미 지난달에만 지급 예정액 3025억원이 발생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지난달 말 역대 최고 수준의 유류세 인하(20%)를 골자로 한 물가 대책을 공개했다. 물론 이로써 연말 물가를 잡긴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국은행은 이달 초 보고서에서 "유류세 인하로 물가 상승률이 0.2~0.3%포인트 정도 낮아질 것으로 추정되나 본격적인 하락 효과는 12월부터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원칙적으론 내수와 물가를 모두 잡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나, 글로벌 공급망 차질·미국 테이퍼링 등 사실상 외통수에 걸린 물가보다는 내수에 치중해 연간 성적표 관리에 매진하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달 3일 펴낸 '물가 상방 리스크 요인의 주요 내용 및 쟁점'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재정·통화 정책 완화로 경기 부양을 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많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민 물가 부담을 줄이는 정책 수단이 더 필요하다는 요구는 계속된다.

통상 경제 성장에 따른 물가 상승은 '좋은 인플레이션'으로 평가되나,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초래된 물가 상승은 중산층 이하 생계비 가중으로 이어져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한국은행은 총수요 측면의 지속성 높은 인플레에는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만 유가 같은 공급 충격에는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라며 "(정부는) 최근 유류세 인하와 같이 서민 물가 부담을 줄이는 조세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