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민영화 의심 부추긴 한전의 밸류업 군불…산더미 빚 해결부터

서울의 한국전력 영업지점. 2023.5.1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의 한국전력 영업지점. 2023.5.1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세종=뉴스1) 심언기 기자 =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과 공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준정부 기관 사이에 선 공기업들의 스탠스는 매우 어정쩡하다. 한전이 대표적이다. 상장된 기업임에도 수익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전기요금 결정 권한이 없다. 역마진 구조 탓에 200조 원의 부채도 떠안았다. 시장 논리라면 진작 정리됐어야 할 기업이지만 망할 걱정은 없다. 공기업 한전의 역설이다.

시장에 역행하는 한전의 경영 행보는 매번 논란을 불러온다. 수익을 낼 수 없게 손발이 묶인 채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직원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배당은커녕 주가 하락을 감내해야 하는 주주들은 뿔이 나 있다.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겠다고 반발하는 소액 주주들 심경도 십분 이해된다.

그런 한전의 주가가 최근 상승 흐름을 탔다. 반등 조짐을 보이는 실적과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에 따른 흑자 전망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일반 기업이었다면 감당하기 힘든 부채, 누적적자 규모 등을 감안하면 이같은 주가 흐름은 시장 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다.

한전 주가의 보다 핵심 원인은 정부에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 해소를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은 금융당국 방침에 공기업 한전이 적극 호응하지 않겠냐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전 사장은 한도까지 자사주 매입 입장을 밝히며 발 빠른 호응에 나섰고, 공공기관 경영평가 기준에 주주가치 제고 항목이 포함될 것이란 전망까지 겹치며 한전 주가는 모처럼 훈풍이다.

한전 밸류업은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 투자금 유입은 한전 유동성 등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매출 88조 원의 최대 공기업 가치 제고는 한국 주식시장 전반에 활력을 줄 수 있다.

문제는 한전 밸류업 추진의 반대급부로 부상하는 것이 '민영화 가능성' 논란이란 점이다.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돼 온 한전 민영화 이슈는 늘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다. 필수 소비재인 전력의 공급과 가격에 그만큼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무구조 개선에 착수한 이후에도 한전 민영화 논란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자회사 한전KDN 상장 및 지분 매각 계획이 대표적이다. 김동철 사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국유기업에서 민영화 후 이탈리아 전기요금 폭등을 야기한 '에넬(ENEL)'사를 롤모델로 제시해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기업 가치 제고 방안에는 여러 길이 있지만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천문학적 부채 해결책도 선명히 제시 못 하는 기업이 밸류업 군불부터 때는 것은 선후가 뒤바뀌었다. 최근 단기 흑자 기록으로 요금인상 명분 퇴색을 걱정해야 할 한전이 주가관리에 신경 쓰는 모양새를 보이자, 한전 내부뿐 아니라 자회사 등에서는 '민심 역풍'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정부도 전기요금 인상과 맞물린 민영화 논란 등을 잠재울 확실한 신호등을 켜주기 바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민영에서 국유화된 일본,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전력시장 민영화를 진정 추진할 의사가 있다면 공론화를, 고려 대상이 아니라면 그에 부합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에너지 생태계의 혼란상을 서둘러 잠재워주길 바란다.

뉴스1 경제부 심언기 기자

eonki@news1.kr